오피니언 사설

30년간 구타·감금·착취 … 우리가 무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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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새우잡이배 인신매매는 우리 사회에 떠도는 오랜 괴담의 하나다. 실제로 지난해 새우잡이배에 팔려가 25년간 강제노역을 했던 남성의 사연이 소개되며 실체가 없는 얘기가 아님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다 이번엔 군산의 한 여관에서 지적장애인과 노숙인 등을 유인해 감금해 놓고 어선과 양식장 등에서 노역을 시킨 뒤 임금을 가로챈 일당들이 해경 광역수사대에 잡혔다. 특히 이들은 이 사업을 수십 년 동안 대를 이어 가업으로 영위해 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준다. 해경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도서지역 장애인 착취 사례가 없는지 관련 첩보를 수집하는 과정에 우연히 걸려들었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피의자들은 군산시에 여관 이름을 내걸고 30년 동안 인신매매와 감금·구타·선원 알선 등을 해왔다. 이곳에 들어간 정상인들도 오랜 구타와 감금으로 비정상적 행동을 한다고 경찰은 밝혔다. 그런데 그동안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이토록 무심했는지 궁금하다. 여관은 정기적으로 소방점검도 받아야 하고, 파출소도 순찰을 할 터이다. 그런데도 전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점에서 공무원들이 직무를 지나치게 태만하게 했거나 업주와 유착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또 해양경찰은 어업 중인 배의 선원과 통화하는 등 불법 사례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피해자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으나 옆에 선장이 있어서 구해 달라고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선주들의 경우 인력알선 업자와 고용계약서를 체결하고 선불을 주었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렇게 합법의 탈을 쓴 불법이 판치는 마당에 경찰의 안이한 근무태도가 불법을 조장하고 키운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런 인권유린 사례는 더 있을 것이라는 게 해경의 관측이다. 경찰도 적극 수사에 나서야 하지만, 우리 모두 자기 주변에 인권 유린의 현장은 없는지 살펴보고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정부도 차제에 인권사각지대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