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 1위 만든 그들, 소외돼 있던 2군급 선수들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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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영 키움자산운용 대표가 김동유 작가의 ‘두 얼굴’ 시리즈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05년부터 투자로서 미술작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윤 대표는 현재 현대예술 작품 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윤 대표는 “투자도 감성이 중요하다. 투자자들이 돈을 잃으면 마음이 아픈 것처럼, 펀드 매니저들도 고객의 입장에서 자산을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도훈 기자]

올 1분기 중 한국 펀드운용시장에 ‘작지만 강한’ 반란이 있었다. 생긴 지 1년을 갓 넘긴 키움자산운용이 주식형펀드 수익률에서 업계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중앙일보·제로인펀드평가 결과 키움운용은 1분기 중 12.5%의 수익을 달성해 업계 평균(8.7%)을 4%포인트 가까이 앞질렀다. 1년 수익률 역시 2.5%로 같은 기간 운용사 평균(-9.0%)을 11%포인트 이상 웃돌았다.

 윤수영(51) 키움자산운용 대표는 “우리 회사에는 스타 펀드매니저가 없다”며 “탄탄한 팀플레이를 바탕으로 원칙에 충실한 투자를 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1년4개월 전 회사를 출범시키면서 업계에서 능력에 비해 소외돼 있던 2군급 선수들을 골라 모았는데 이들이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놀라운 투혼을 보여줬다”고 했다. 윤 대표 본인도 업계에 크게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인물이다. 쌍용투자증권(현 신한증권)에서 출발해 일선 지점장과 리테일본부장 등을 거친 평범한 증권맨이었다.

“잠깐 운이 따라준 것 아니냐”는 평가에 대해 윤 대표는 “키움증권이 보여줬던 성공 신화를 키움자산도 쓰게 될 테니 한번 두고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원칙에 충실한 투자로 고수익을 냈다고 했는데, 그 원칙이 뭔가.

 “첫째, 산업 사이클을 읽어내 상승하는 4대 산업 정도를 추려 집중 투자하는 방식이다. 또 산업 사이클의 변화를 파악해 발 빠르게 말을 갈아타기도 한다. 이런 원칙에 따라 지난해 상반기 중 자동차·화학·정유에 올라탔고, 하반기에는 IT와 금융 쪽으로 갈아탔다. 산업 사이클의 변화를 읽어내는 힘은 주로 중국 경제의 흐름을 면밀히 관찰하는 데서 나온다. 둘째, 반드시 기업 현장을 방문해 변화를 확인한다. 지난해에만 500회 이상 기업을 탐방했다. 셋째, 개인의 능력보다는 팀플레이에 의존한다. 시장의 흐름을 전망하고 종목을 발굴할 때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합의제로 한다.”

 -고객 자산이 이제 1500억원 규모고 주식형은 600억원에 불과하다. 몸집이 가벼워 운 좋게 사고를 친 것은 아닌가.

 “부인하지 않겠다. 몸집이 작은 게 유리했을 수도 있다. 다만 우리의 능력과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국 펀드시장에선 작은 몸집에서 시작해 돈을 새로 끌어모으는 운용사의 수익률이 대체로 좋다. 거꾸로 조 단위의 공룡펀드가 된 뒤 돈이 빠져나가는 경우는 십중팔구 수익률이 나쁘다. 돈이 빠져나가는 펀드는 좋은 종목도 울며 겨자 먹기로 팔아야 하고, 발 빠르게 종목을 교체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이런 사실을 거꾸로 이용할 필요도 있다. 신생 펀드들을 일정 부분 포함시키는 전략 말이다.”

 -올 들어 주식형펀드 환매자금이 8조원을 넘는다. 환매 사태의 이유는 뭐라고 보나.

 “펀드 판매사나 운용사나 펀드시장의 물이 좋을 때 앞뒤 안 가리고 팔고 보자는 자세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투자자 자산에 대한 위험관리는 안중에 없었다. 그러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시장 탓’만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펀드시장 전체에 불신이 깊어졌다. 투자의 고수라면 2007~2008년 버블 때 ‘이젠 리스크 관리에 들어가야 할 때’라고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우리는 앞으로 시장이 과열됐다 판단되면 스스로 펀드 출시를 중단할 생각이다.”

 -심각한 불신을 얘기했는데, 한국 펀드시장이 계속 침체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초저금리와 고령화의 시대를 맞아 주식은 외면할 수 없는 투자 대상이다.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는 자산관리를 해야 하고, 전문가에게 주식투자를 맡기는 펀드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자들의 이익에 집중하는 운용사들이 다시 늘어날 것이고 투자자들도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은 뒤 시장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증시는 어떻게 전망하나.

 “대체로 ‘상고하저’, 즉 상반기 중 크게 오르고 하반기엔 쉬는 시장을 얘기하는데, 나의 생각은 다르다. 하반기에도 주가는 꾸준히 오를 것으로 본다. 코스피지수는 최고 2400까지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오히려 2분기가 힘들 수 있다고 진단한다. 스페인·이란·중국 등 변수가 언제 시장을 흔들지 모른다. ”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 유가 상승 등으로 기업 실적이 둔화될 것이란 우려가 있는데.

 “한국의 수출 기업들은 이미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익이 좀 줄긴 할 것이다. 그러나 원화 강세를 겨냥한 외국인 투자자금은 계속 유입될 것으로 본다. 한국 증시에서 원화 강세와 코스피지수 상승의 상관도는 90%를 넘는다. 유가 상승은 그만큼 글로벌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싶다. 앞으로 IT와 자동차, 산업플랜트와 소비재 등의 산업이 유망해 보인다.”

 -키움운용의 펀드 이름이 이채롭다. ‘승부’ ‘장대’ ‘작은 거인’ ‘선명’ 등 토종 작명 일색이다. 대부분 외국어인 다른 운용사 펀드들과 비교된다.

 “투자자들이 펀드 이름만 들어도 어떤 펀드인지 감을 잡도록 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승부’는 위험감수형, ‘작은 거인’은 중소형주형, ‘장대’는 절대수익 추구형 등이란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키움’이란 회사 이름과 일맥상통하는 펀드 이름들이다.”

윤수영은…  1961년 충북 충주생. 서울대 경제학과(80학번)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땄다. 87년 쌍용투자증권에 입사해 지점영업, 법인영업, 리테일 등의 업무를 두루 거쳤다. 2000년 키움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온라인영업과 기획을 총괄했다. 2010년 국내 77번째 자산운용사로 출범한 키움운용의 초대 대표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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