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좌파 왓슨, 그린재킷 입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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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버바 왓슨(왼쪽)이 9일(한국시간) 끝난 76회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에서 2차 연장 끝에 루이 우스트히즌을 누르고 우승을 확정한 뒤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캐디 테드 스콧과 포옹으로 기쁨을 나누고 있다. [오거스타 로이터=뉴시스]

저무는 태양이 조지아 소나무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울 때 버바 왓슨(34·미국)은 숲 속에 있었다. 연장 두 번째 홀에서 그가 친 티샷은 오른쪽 숲으로 들어갔다. 공을 빼낼 틈은 있었지만 그린은 보이지 않았고 중계 카메라를 위해 세워 놓은 타워도 그의 앞을 막았다. 카메라를 핑계로 공의 위치를 옮겨 놓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왓슨은 가방에서 52도 웨지를 꺼내들고 원래 그러던 것처럼 그냥 힘껏 휘둘렀다.

 홀까지는 164야드. 왓슨의 공은 나무 사이를 낮게 날아간 뒤 숲을 벗어나자마자 오른쪽으로 휘면서 높이 떠올랐다. 그린에 내린 후엔 스핀까지 걸렸다. 핀에서 3m에 붙는 기적 같은 샷이었다. 메이저대회에서 여섯 번 우승한 ‘스윙 머신’ 닉 팔도(55·잉글랜드)는 “수십 년 골프를 했지만 이런 샷은 본 적이 없다. 물리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왓슨은 레슨서를 새로 쓰고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지난해 우승자 샬 슈워첼(왼쪽)이 왓슨에게 그린재킷을 입혀주고 있다. [오거스타 로이터=뉴시스]

 왼손잡이 장타자 왓슨이 9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골프장에서 끝난 76회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에서 4언더파 68타를 쳤다. 왓슨은 최종 합계 10언더파로 루이 우스트히즌(30·남아공)과 2차 연장을 벌인 끝에 그린 재킷을 입었다.

 경기 초반엔 우스트히즌이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575야드짜리 파 5인 2번홀에서 내리막 253야드를 남기고 4번 아이언을 쳐서 앨버트로스를 했다. 마스터스 사상 네 번째이며 2번홀에서 나온 첫 더블이글이었다. 천둥 같은 함성이 터졌고 한 홀에서 3타를 줄인 우스트히즌은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왓슨은 첫 홀에서 3퍼트 보기를 하면서 기분 나쁘게 출발했다. 이후 퍼트가 말을 듣지 않아 점수를 줄이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러나 파 5인 13번홀에서 가뿐히 2온에 성공해 버디를 잡아내며 분위기를 바꿨다. 이후 16번홀까지 버디가 이어졌고 10언더파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10번 홀에서 치러진 연장 두 번째 홀에서 왓슨은 티샷을 실수하고도 낮게 깔리다 오른쪽으로 높이 떠서 스핀이 걸리는 훅샷으로 파세이브에 성공해 우승을 차지했다. 그린재킷을 안겨준 것은 이 기괴한 샷이었다. 왓슨은 2010년 PGA 챔피언십 연장전에서 마르틴 카이머(독일)에게 패한 아픔을 딛고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

 왓슨은 특이한 선수다. 레슨을 한 번도 받지 않았고 골프 비디오도 보지 않았다. 그냥 혼자 골프 스윙을 터득했다고 한다. 스윙이 정통이 아니지만 최고의 장타를 친다. 422야드를 친 기록도 있다. 그는 “골프 프로가 만들어 주는 전형적인 스윙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맞는 스윙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왓슨은 핑크색 샤프트와 헤드의 드라이버를 쓴다. 5억원짜리 시계를 차고 다니며 수퍼맨처럼 입고 행동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리키 파울러, 헌터 메이헌 등 동료 선수 3명과 함께 골프 보이즈라는 그룹을 만들어 노래를 하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경기 후 “오늘은 마스터스 우승만이 아니라 부활절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선기금 마련을 위해 나흘 내내 흰색 옷만 입었다.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서 선수생활을 한 부인 안젤라의 건강이 좋지 않아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고 지난주 입양했다. 왓슨은 “빨리 집에 가서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배상문(26·캘러웨이)은 4오버파 37위, 양용은(40·KB국민은행)은 11오버파 57위로 경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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