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농민 가난서 해방시킬 한국 낙농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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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중국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의 한 농부가 젖소목장에서 밝게 웃고 있다. 이 농부는 젖소를 ‘코휘드 목장’에 맡기는 대신 한 마리당 연간 3000위안(약 54만원)을 받게 된다. 코휘드의 젖소 위탁사업은 이 지역 낙농 현대화의 한 모델로 부각되고 있다. [사진 이매진차이나]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중국의 모든 어린이가 매일 하루 100g의 우유를 마시는 게 바로 그것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지난 2006년 한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생산량이 충분하지 못해 농촌 어린이들은 우유를 구경하기 힘들고, 도시에서는 2008년 터진 멜라민 파동으로 우유에 대한 불신감이 높다. 고품질 우유를 안정적으로 보급하는 것은 이제 중국의 국가적인 현안이 됐다. 헤이룽장(黑龍江)성 치치하얼(齊齊哈爾) 당국이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목장의 주식회사화’가 해답이다. 이 사업의 핵심이 바로 한국 기업이다.

하얼빈 비행장에서 자동차를 타고 6시간을 달려 도착한 치치하얼의 ‘코휘드 목장(科菲特牧場)’. 사방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 젖소 축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초지에서는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목장에서는 착유 작업이 한창이다. 근처 멍뉴(夢牛) 우유공장으로 공급될 원유다. 목장 관리인 황창이(黃昌義)씨는 “젖을 짜기가 무섭게 멍뉴에서 가져간다”며 “우리 목장 원유는 이곳에서 최상품으로 인정받아 값이 10% 정도 비싸다”고 말했다.

 이 목장의 주인은 한국의 사료 전문 투자기업인 코휘드(Cofeed)다. 그러나 1000마리의 이곳 젖소는 코휘드 소유가 아니다. 주변 농민이 맡긴 것을 코휘드가 대신 관리해주는 형식이다. 이정주 코휘드 사장은 “주변 농민이 소를 우리 목장에 위탁하고, 대신 그들에게 한 마리당 연간 3000위안(약 54만원)씩 지급하고 있다”며 “우리는 젖을 생산해 이득을 얻고, 농민은 생산성 낮은 농업에서 해방될 수 있어 이득”이라고 말했다. 중국 농민과의 상생이다.

 치치하얼 시당국도 상생의 혜택을 보고 있다. 스윈펑(史云鵬) 치치하얼종축(種畜)장 총경리는 “코휘드의 사료 기술과 한국의 낙농 노하우라면 축산업을 현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사업을 제안했다”며 “이 모델이 성공한다면 헤이룽장성 전체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휘드는 현지 목축인 교육을 위해 ‘낙농교육센터’도 설립할 계획이다. 코휘드-농민-시당국 등 ‘3자 상생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코휘드와 치치하얼시의 계약에 따라 목장의 젖소는 6월까지 5000마리로 늘어나게 된다. 젖소 한 마리당 15무(약 3000평)의 초지가 10년간 무상으로 제공된다. 이 사장은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 5000마리 젖소 목장을 경영할 수 있게 됐다”며 “코휘드가 생산한 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실익도 챙긴다”고 말했다. 한국의 사료와 낙농 기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상생’이다. 코휘드는 9명의 연구원들이 창춘(長春)의 연구개발 센터에서 사료 개발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

 코휘드의 최종 목표는 프리미엄급 우유 브랜드 개발이다. 이 사장은 “젖소 5000마리가 되면 하루 약 50t 규모의 젖을 짤 수 있다”며 “작은 우유공장을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사료-목장-우유 완제품에 이르는 비즈니스 라인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현지 지방정부도 적극적이다. 코휘드 사료공장이 있는 푸위(富裕)현의 왕수성(王樹生) 현장은 “멜라민 파동 이후 안전 우유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며 “코휘드의 프리미엄급 우유 생산을 적극 지원한다는 게 시당국의 뜻”이라고 덧붙였다. 1980년대 파스퇴르가 서울에서 일으켰던 ‘우유 혁명의 꿈’이 헤이룽장에서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신(新)농촌건설에 뛰어든 한국 투자프로젝트는 이 밖에도 많다. 산둥성 교주에 진출한 돼지 사육업체인 신청봉은 돼지 2만 마리를 기르고 있다. 신청봉 돼지고기는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1.5배의 비싼 가격에 베이징·상하이 등의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된다. 베이징에 진출한 종자업체인 세농종묘는 고품종 씨앗 개발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농이 개발해 보급하고 있는 무 종자인 바위춘(白玉春)은 무 씨앗 시장의 70%를 차지할 정도다. 제조업과 소비시장에 그쳤던 양국 협력이 농업분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특별취재팀=남정호 순회특파원
한우덕·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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