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대건설 독자생존 5가지 조건]

중앙일보

입력

1조2천9백억원은 과연 현대건설을 회생시키는 희망의 불쏘시개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이 한겨울 잠깐 훈기를 피우는 난로용 장작개비에 그치고 말 것인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민형 연구원은 "현대의 자구방안은 당장 급한 상황을 진정시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방책" 이라며 "자구방안 이행은 기본이며 영업전략 변화와 구조조정 등 내부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 고 지적했다.

◇ 자구방안 제대로 실행해야=현대의 자구방안 중 현재 확실한 것은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출자전환과 현대차 주식 매각 2천6백억원▶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사재출자 4백억원▶서산농장 매각 선수금 2천1백억원 등 5천1백억원이며, 나머지는 실행 강도와 시장 여건.계열사의 협조 여부에 달려 있다.

현대가 자구방안을 이행해 확보하겠다는 유동성 규모가 7천7백28억원인데, 계동 사옥과 인천 철구공장은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어 팔리면 차입금 1천4백74억원을 갚아야 한다.

그러면 6천2백54억원이 남는데 연말까지 갚아야 할 해외차입금과 개인 보유 회사채가 5천6백억원으로 6백54억원의 여유 밖에 없는 셈이다. 따라서 자구방안 중 하나만 삐끗해도 차입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한국투자신탁 이주익 연구위원은 "올해 자구계획을 제대로 실행하면 내년 상반기까지 견딜 수 있다" 며 "연말까지 돌아올 2천5백억원의 물대어음을 결제할 때 일시적으로 자금 수급의 불균형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 내년에도 빚 줄여야=내년에 만기가 되는 회사채는 1조8천억원이며, 상반기에 8천3백억원을 해결해야 한다. 은행 차입금과 달리 회사채는 차환(借換)발행이 쉽지 않고, 개인 보유 회사채는 금융권의 만기 연장 대상이 아니다. 신용등급이 투자적격으로 회복돼도 당장 기관투자가가 현대의 회사채를 사줄 지도 의문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서산농장의 추가 매각대금이 들어오고 자구방안을 잘 실천하면 신용등급이 올라 회사채의 차환발행이 가능해질 것" 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주익 연구위원은 "현대의 내년 영업이익은 6천억원으로 예상되는데, 내년 중 차입금 이자만 6천억원이고 이라크 미수금 대손충당금과 마이너스로 예상되는 경상이익률을 감안하면 영업이익으로 손실을 메꾸기가 어려울 것" 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현대건설은 내년에도 추가 자구계획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영업방향 바꿔야=건설 전문가들은 현대건설이 영업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택사업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있는 토목.플랜트.해외사업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현대의 주택사업 비중은 매출액(5조7천2백억원)의 18%. 여기에 주상복합 아파트와 오피스텔 사업까지 합치면 30%를 넘는다.

현대가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주한 해외공사의 영업이익률은 10%에 못미치고 이마저도 환차손으로 남은 게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올들어 수주한 해외공사(10월말 현재 23억달러 어치)는 영업이익률이 14%로 높아졌다.

따라서 당분간 해외건설을 버릴 수 없다는게 회사 입장이다.

정몽헌 회장은 20일 "현금 부담이 많은 아파트와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을 줄이고 수익성과 유동성이 따라주지 않는 공사도 수주하지 않을 계획" 이라고 말했다.

◇ 자체 구조조정 급해=현대건설의 직원은 7천1백여명. 지난해 현대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해 1천3백명이 증가했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현대의 문제는 현장이 너무 많아 덩치 경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데 있었다" 며 "돈이 되는 사업장부터 과감히 팔아 경영 효율을 높여야 한다" 고 말했다.

◇ 건설.부동산 경기도 변수=현대가 짓고 있는 아파트는 5만가구며, 분양이 안돼 잠긴 돈이 1조4천억원이나 된다.

유동성 위기로 고객의 신뢰를 잃은 탓도 있지만 주택경기의 침체로 분양되지 않은 게 대부분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내년 주택경기는 올해 수준에 머물 것" 이라고 전제한 뒤 "올해 안에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면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것" 으로 내다봤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