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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실조 시달리는 아프간 사람들 … 보릿고개 이긴 한국 배우고 싶어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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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한국이 한국전쟁과 보릿고개를 극복한 얘기를 들려주면 진심으로 배우고 싶어합니다.”

 10년째 아프간에 콩 심기 운동을 펴고 있는 재미교포 권순영(64·사진) 박사의 말이다. 지난주 서울에 온 그는 2003년 이래 39번째 아프간을 오가며 콩 농사를 보급했다. 본래 아프간에서는 콩을 심는 법도, 먹는 법도 낯설었다. 현재는 전체 34개 주에 콩 농사가 보급됐다. 권 박사는 “치안이 불안한 상황에서 각 주정부마다 협력을 얻지 않고는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부터 콩 씨앗도 현지에서 생산한 걸 쓴다”고 했다. 수매한 콩은 콩가루로 가공해 현지인들의 주식인 ‘난’을 만들 때 밀가루와 섞어 활용한다. 영양 부족 상태인 아프간인들에겐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이 되고 있다. 이런 지속적 노력에 올해부터 유엔 산하 세계식량프로그램(WFP)도 동참했다. WFP의 지원을 받아 콩가루로 학교급식용 비스킷도 만들게 됐다. 두유도 만든다. 현지 시설에서 가공한 두유는 2006년부터 난민촌 등의 여성과 어린이에게 나눠주고 있다.

 “난민촌에서는 앓던 아이들이 춥고 배고파 밤사이 숨지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젖을 못 먹이던 여성이 두유를 먹고 젖이 나오기 시작해 기뻐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어요.” 그는 “2만원이면 10명에게 한 달 동안 두유와 고단백 쿠키를 나눠줄 수 있다”고 말했다.

 권 박사는 1970년대 미국에 유학해 식품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적 식품회사 네슬레에서 20여 년 연구원으로 일했다. 콩으로 만든 영아용 대체분유를 비롯해 의료식품 개발을 담당했다.

 “아프간은 출산하다 산모 6명 중 한 명이 죽습니다. 갓난아기도 10명 중 한 명은 낳자마자 죽어요. 주된 원인이 영양실조입니다.”

 2003년 아프간을 직접 다녀온 뒤 그는 민간단체 NEI(www.neifoundation.or.kr)를 만들었다. LA에 본사를, 서울과 카불에 지사를 두고 후원금을 모아 현지 농가에 콩 씨앗과 비료, 재배기술을 보급해 왔다. 종묘회사에서 콩 종자를 추천받아 2년간 시험재배를 거쳤다. 시험재배 2년차부터 아프간 농축산부도 동참했다.

 “난을 만들 때 콩가루를 10% 섞으면 단백질 함량이 두 배가 돼요. 이런 난은 이틀이 지나도 굳지 않고, 대다수가 맛도 더 좋다고 합니다.”

 그는 2008년 네슬레를 퇴직했다. 아프간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어려서 6·25를 겪은 그는 “옛날엔 우리나라도 가난해서 고기 대신 콩밥, 두부 등 콩이 우리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고 지적했다. “콩의 원산지도 한반도와 만주에요. 아프간에서는 ‘콩’하면 ‘코리안들이 갖고 왔다’고들 합니다. 한국정부에서도 지원을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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