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인터넷… 1,000배 빠른 세상이 열린다

중앙일보

입력

2010년. 시스템통합(SI)업체의 정보기술 담당자인 차세대(35)씨는 제주도행 출장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 설치된 컴퓨터로 회사에 접속한 차씨는 미처 끝내지 못한 회사일을 마무리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택시를 갈아탄 차씨는 갑자기 잊고 있던 업무가 생각나 택시에 있는 키보드를 펼쳤다.

"1.고속 2.보통 3.저속,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세요. " 회사에 접속하려 하니 접속 속도를 묻는 음성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고속!"
차씨는 다급한 나머지 가장 비싼 ''고속'' 을 선택해 일을 처리했다. 점심 약속장소인 S호텔 근처에 다다르자 차씨의 휴대폰에 갑자기 동화상 메시지가 떴다.

"S호텔 근방 5백m 내에 계신 고객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희는 S호텔 옆에 있는 C패밀리 레스토랑입니다. 오늘의 요리인 T본 스테이크를 50% 할인한 3만원에 판매합니다. 꼭 들러 주십시오. "

차씨는 "어제는 술집이더니 오늘은 음식점이야" 라고 중얼거리며 귀찮은 듯 메시지를 지우고 호텔로 들어간다.

전문가들의 예측을 통해 가상으로 꾸며본 10년 뒤의 우리나라 풍속도다. 현재의 인터넷 그후는 어떤 모습일까.

정보기술(IT)전문가들은 IT기술 변화가 워낙 종잡을 수 없어 속단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현재보다 속도가 수백배 이상 빠르고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해 회사일을 보는 것은 일상사가 될 것이란 게 공통점이다.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현재의 인터넷 그후'' 를 준비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IT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은 첫째도 용량, 둘째도 용량, 셋째도 용량이다.

''인터넷'' 이라는 고속도로(인터넷망)가 깔려 많은 것이 편리해졌지만 자동차(이용자)도 덩달아 늘어나 병목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속도로가 짜증나면 당연히 새로 건설되는 ''초고속 전철(차세대 인터넷)'' 이 인기를 끌 전망이다.

지금은 비슷한 접속속도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접속속도를 고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시간과 요금에 따라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를 골라 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1996년 연방정부 주도로 대학.기업이 협력해 차세대 인터넷(NGI.Next Generation Internet,www.ngi.gov)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또 1백80개 대학이 참여하는 대학차세대인터넷개발협회(UCAID)는 인터넷2컨소시엄(http://www.internet2.edu)을 통해 ''인터넷 그후'' 를 연구하고 있다.

NGI는 지금의 인터넷보다 최고 1천배 빠른 네트워크(1000X) 테스트베드(시험대)를 개발하는데 땀을 흘리고 있다.

지금 가정에서 전화모뎀을 이용해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을 내려 받으려면 8일이나 걸린다. 그러나 NGI의 차세대 인터넷을 통해 내려받는 시간은 15초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2년안에 차세대 인터넷이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월드컴은 지난해 미 과학협회(NSF)와 협력해 2백여개 대학을 연결하는 100X(1백배 빠른 네트워크)테스트베드를 가동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미국의 동서 해안 20개 지역을 연결하는 1000X 테스트베드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 망을 이용하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천문학자가 하와이의 마누키아산(해발 4천m) 꼭대기에 있는 11개 천문관측소의 천체 망원경을 자유자재로 조종하고 자신의 연구결과를 화상회의로 토론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2컨소시엄은 멀티미디어 서비스에 필요한 속도를 안정적으로 제공해주는 ''QoS(Quality of Service, 서비스의 질)'' 를 새로운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라우터(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장비)가 가장 중요한 데이터부터 우선 전달하게 해 전송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마치 고속 열차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철로를 비워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QoS기술을 도입하면 원격 수술도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미 오하이오주립대의 제리존슨 박사는 인터넷2를 이용해 4백80km 떨어진 곳의 위장병 환자를 수술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이광형 교수는 "한국도 무선 인터넷은 2년 이내에, 속도 문제는 5년 후면 거의 해결될 것" 이라며 "2010년이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 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부작용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과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개인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사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타인에게 고스란히 공개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개인 정보를 수집해 마케팅에 쓰려는 기업과 이에 맞서 자신의 정보를 지키려는 시민간의 처절한 싸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컴퓨터 미래학자인 톰 키넌도 "10년 뒤엔 일상적인 편안함의 대가로 사생활을 포기하게 되는 결과가 생겨날 것" 이라고 경고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