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카나리아가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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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예전 광부들은 탄광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데리고 갔다. 호흡기가 약한 카나리아는 유독 일산화탄소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런 카나리아가 울기 시작했다. 탄광이 아니라 부동산 이야기다. 수도권 주택값이 4개월 연속 하락했다. 치솟던 전셋값도 올 들어 꺾였다. 국지적으로 가장 무섭게 떨어지는 곳은 재건축과 뉴타운 지역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에도 집값이 무너진다면 답이 없다. “지금 빚내서 집 사면 패가망신(敗家亡身)한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고가 어른거린다.

 부동산 시장이 살얼음판이다. 매수 대기자는 헐값의 급매물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주변 시세보다 싼 ‘착한 분양가’나 1~2인 가구용 ‘착한 평수’에만 입질할 뿐이다. 과거 40년간 공급 부문이 부동산 시장을 좌우했다면, 지금은 수요 측면이 대세다. 그중에도 가장 중요한 게 금리다.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는 위로 튈 가능성, 즉 상방(上方) 리스크가 여전하다. 급변하는 인구구조도 부동산 시장에 불리하게 돌아간다. 무리한 부동산 대출에 한국 특유의 안전판이던 전세는 그 비중이 줄고 있다.

 그동안 부동산 거품 붕괴를 모면한 나라는 한국과 중국 정도다. 하지만 사방이 지뢰밭이다. 유럽 재정위기 같은 외생 변수가 언제 불거질지 모르고, 전셋값 급등으로 가계 빚은 턱까지 차올랐다. 은퇴하는 베이비 부머들은 주택처분의 기회를 엿보고, 수요층인 2030세대는 실업과 비정규직화로 주택 구매력이 떨어진다. 지금 부동산에 특효약은 없다. 거품 붕괴를 저지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부동산 급락이 가계대출 부실→금융불안→경제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쓰나미의 피해자는 항상 서민이었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뉴타운 출구전략을 서두르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의 소형 평형 확대도 밀어붙이고 있다. 방향과 취지는 옳을지 몰라도 방법과 타이밍이 불길하다. 이념에 치우친 근시안적 실험이란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뉴타운·재건축은 이미 ‘박원순 리스크’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시장은 불투명성이 높아질수록 신경질적 반응을 보인다. 리트머스 시험지인 재건축이 얼어붙으면 전체 부동산 시장의 체온도 빠르게 떨어지기 마련이다. 원래 거품이란 게 그렇다. 풍선처럼 서서히 부풀어 오르다 인위적인 충격으로 급격히 꺾어지는 게 특징이다. 일본·미국도 저금리 속에서 낀 거품이 금리를 올리면서 삽시간에 붕괴됐다.

 우리 부동산도 연(軟)착륙에 중심을 두고 예민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 가장 현실적인 처방은 ‘1992년 방식’이 아닐까 싶다. 당시 부동산은 1기 신도시 이후 97년까지 역사상 유례없는 안정 국면을 이어갔다. 부동산 가격이 6년간 제자리에 머문 반면 가처분 소득은 빠르게 올라갔다. 80년대 말까지 부동산에 끼었던 거품이 장기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해소된 비밀이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 부동산이 거품인가 아닌가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거품 리스크는 측정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지금도 가장 무리 없는 해결책은 92년의 지혜다. 최대한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은 매우 정치적이다. 꼭 1년 전 분당 재선거는 사실상 부동산이 승부를 갈랐다. 떨어지는 아파트값과 치솟는 전셋값에 자극받은 분당 유권자들이 분노로 심판했다. 전통적인 여당 표밭에서 야당 손학규 후보가 압승하는 이변을 낳았다. 올해 총선·대선에도 진짜 승부처는 부동산 민심일지 모른다. ‘MB 심판’이란 단골 소재에다, 박 시장의 뉴타운·재건축 실험이란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분노한 민심이 어느 쪽을 향할지 지켜볼 일이다. 부동산의 카나리아가 구슬피 울기 시작했다. 작은 실수 하나가 결정적 패착으로 이어지는 예민한 경계수역이다. 과거 일본·미국의 자충수(自充手)를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과연 우리는 카나리아 울음 따라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옛말에 현명한 사람은 들어서 알고, 똑똑한 사람은 보아서 알고, 어리석은 사람은 당해봐야 안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