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당, 진보당 정책으로 선거 치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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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약칭 민주당)이 극좌파 미니 정당인 통합진보당(진보당)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다. 야권연대로 4·11 총선을 이겨야 한다는 데 혈안이 된 나머지 진보당의 무리한 요구에 줏대 없이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진보당과 연대 협상을 진행해 온 민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입장을 또 바꿨다. FTA 폐기를 주장하다 거센 역풍을 맞자 ‘FTA 재재협상을 하자는 것’이라고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더니 이번엔 진보당의 압력에 못 이겨 ‘FTA 종료를 포함해 전면 재검토를 해야 한다’로 방침을 수정했다. 진보당이 연대의 조건으로 내세운 FTA 폐기 요구를 사실상 수용하면서 ‘폐기’란 표현만 쓰지 않은 것이다.

 이정희 진보당 공동대표가 “종료는 법률적 용어이며, 거기엔 폐기란 뜻이 들어 있다”고 했다는데 맞는 말이다. FTA 종료는 곧 폐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은 ‘폐기’란 말을 쓰지 않았을 뿐 FTA 폐기에 동의한 셈이고, 그걸 ‘종료를 포함해 전면 재검토’라는 기만적인 표현으로 슬쩍 가리려고 했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결과 탄생한 한·미FTA는 이제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한명숙 대표가 이끌고, 친노가 주력부대인 민주당에 의해 싸늘하게 버림받는 신세가 됐다.

 한·미 FTA는 15일 발효하지만 12월 19일 대선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하면 언제든 숨통이 끊길 수 있다. 민주당과 진보당이 힘을 합쳐 대선에서 승리하고, 양당이 내세운 대통령 후보가 내년 2월 말 19대 대통령에 취임하면 한·미 FTA는 한국 대통령의 서한 한 장으로 끝장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대통령을 배출할 경우 대선 때 힘을 보태줄 게 틀림없는 진보당의 협정 폐기 요구를 묵살하기 어려울 것인 만큼 한·미 FTA는 장수(長壽)를 누리지 못하고, 단명(短命)하는 비운(悲運)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도 야권연대의 제물로 삼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다각적 검토를 한 끝에 추진키로 한 이 해군기지 건설을 민주당은 결사 저지하기로 했다. 역시 진보당과의 연대 때문에 강경한 방침을 세운 것이다. 한·미 FTA나 제주 해군기지가 꼭 필요하다고 했던 한명숙 대표가 강정마을로 달려가 이정희 공동대표와 함께 공사 중단 시위를 벌인 것을 보면 민주당엔 야권연대가 지상 최고의 가치인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는 국민은 민주당의 이런 태도를 어떻게 평가할까. 국회와 대권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선 국민경제와 국가안보를 희생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무책임한 행태의 극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민주당이 진보당과 연대하면 이번 총선에서 꽤 많은 의석을 건질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은 야권연대 과정에서 민주당이 사익(私益)을 앞세우는지, 국익을 추구하는지 주시할 것이다. 민주당이 과연 상식에 맞게 행동하는지 국민은 꼼꼼하게 따져볼 테고, 투표를 통해 심판할 것이란 점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