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야 공천, 초심 잃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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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극심한 공천 후유증을 앓고 있다.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어서다. 낙천자 가운데 무소속으로든, 다른 정당 간판으로든 4·11 총선에 반드시 출마하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은 만큼 총선구도에도 변화가 생길지 모른다. 새누리당에서 실패한 이들이 자유선진당이나 국민생각으로 가거나 ‘무소속 연대’를 만들고, 민주통합당에서 잘린 인사들이 ‘민주동우회’(가칭)를 결성해 각개약진식으로 총선에 도전하는 구도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공천엔 불만과 반발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탈락자들로선 정치생명이 일단 끊기는 것인 만큼 참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권에 승복의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지 못한 탓도 있다. 여야의 공천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이뤄졌다면 후유증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양당 공천의 경우 과연 그런 기준이 적용됐는지 의문이다. 12월 대선을 의식한 패거리 공천이고, 능력·경쟁력보다는 충성도를 따진 공천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새누리당에서 친이명박계 현역의원 상당수가 탈락한 반면 친박근혜계 의원들은 대다수가 생존하게 된 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대선 도전을 염두에 둔 포석 아니냐고 묻고 싶다. 새누리당에 친이명박계 의원이 많은 만큼 탈락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일부 친이명박계 의원들은 계파 때문에 희생됐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민주통합당에서 친노무현계는 대부분 공천받고, 김대중계와 옛 민주당계는 대거 낙천한 점 역시 친노 세력의 대권 플랜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싶다.

 양당은 당초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천을 하겠다고 했다. 대다수의 지역에서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국민의 손으로 뽑는 총선 후보를 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공염불에 그쳤다. 시간 촉박, 입법 미비,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중앙당 낙점 방식을 선호했다. 새누리당에서 “친박계 전횡”, 민주통합당에선 “친노의 향연” “486 농단” 등의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초심을 잃은 양당이 남은 지역 공천에서 감동을 줄 걸로 기대하긴 어렵다. 이젠 정당이 내놓은 후보들의 옥석(玉石)을 유권자가 가리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