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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파일럿프로 '인디드라마 - 동시상영' 준비

중앙일보

입력

"방송드라마 장르는 그 역사에 비해 확대되지 못한 채 반복을 되풀이 하고 있다. 장르의 불변은 다름 아닌 이야기의 제약으로 나타나게 된다. 세상에 널려있는 온갖 다양한 이야기의 소재는 결국 본의 아니게 남녀간의 삼각관계, 고부간의 갈등, 콩쥐팥쥐론, 신데렐라 콤플렉스 등으로 국한되는 현상을 낳았다"

어느 시민단체의 방송모니터 보고서가 아니라, KBS의 한 드라마 기획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최근 방송드라마들이 더 이상 새로운 소재 없이 천편일률적 구도를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은 이처럼 드라마 제작자 스스로도 깊이 공감하는 내용. 이 기획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찾기 위해 '새로운 형식' 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KBS가 드라마 장르에서는 보기 드물게 파일럿프로그램 (정규 편성을 결정하기 전에 한 회분을 미리 방송, 시청자의 반응을 가늠해보는 프로그램) 을 준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11월말 방송 예정인 가칭〈주간 인디드라마 - 동시상영〉이 그것. 거대 지상파 방송사와 '인디' 라는 수식은 언뜻 어울리지 않지만, 제작진은 일일.주말.아침.미니시리즈 등 기존 드라마 유형이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는 비주류적 감성과 일상의 에피소드를 적극 소화하겠다는 의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프로그램을 제안한 이교욱 PD는 우선 극장의 2편 동시상영처럼 25분짜리 단편 2개를 묶는 형식을 설정했다. 언뜻 단막극〈베스트극장〉 이나〈드라마시티〉를 둘로 쪼갠 것 같지만, 출연자가 고정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후반 25분의 경우 30대 생활인 세 사람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엘리베이터를 피하고 계단으로만 오르내리는 아파트 입주민, 받은 명함의 주인이 누군지 몰라 눈치를 보는 영업직원, 새 사장이 내놓은 혁신적인 경영방침 때문에 좌충우돌하는 회사원 등 일상의 한 장면을 포착해 마치 단편영화처럼 그려나가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전반 25분은 고정출연자가 있되, 매회 극중 배역을 달리하는 점이 흡사 과거 코미디프로〈테마극장〉을 연상시킨다.

첫회로 준비중인 이야기는 길에서 주운 6㎜디지털 카메라로 인해 벌어지는 소동. 신매체.신문화에 얽힌 현대인의 단상을 우화처럼 풀어나갈 계획이다. 전반 25분의 주인공이 후반 25분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등 앞뒤 두 이야기가 결국 우리가 사는 하나의 세상으로 연결됨을 암시하는 장치도 등장시킬 예정이다.

현재 후반부 주연으로 변우민.권해효 등이, 전반부 고정출연자로 안재모.김경식 등을 캐스팅한 상태. '새로운 이야기' 를 TV브라운관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제작진의 시도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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