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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기자의 문학사이 ⑥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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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정강현 기자

당신은 이달에 책을 사느라 2만570원을 썼습니다. 지난해 대한민국 2인 이상 가구가 책 구입에 쓴 월평균 비용이군요. 통계청 발표에 따르자면 그렇습니다.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2010년(2만1902원)에 비해 1332원이나 줄었다며 성토했습니다. 아마도 책 구입에 인색한 국민을 꾸짖기 위함이겠지요.

 그러나 문학사이의 생각은 다릅니다. 사는 꼴이 팍팍한 마당에 매달 2만원 넘게 책을 구입한다면, 격려할 만한 일이지요.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연간 노동시간 2193시간. OECD 회원국 가운데 당당한 1등 아닙니까. 이런 마당에 책 안 본다는 타박까지 받으면, 억울해라, 이 나라에 살기가 싫어집니다.

 문학사이의 고민은 이런 것입니다. 요는 책 구입비가 아니라, 어떤 책을 구입하느냐는 것. 어차피 독서 시간이 모자라고 살림도 넉넉하지 않다면, 투입은 적되 효율은 높은 책을 고르자는 얘기입니다. 그런 책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주저 않고 “시집”이라 외치겠습니다.

 언젠가 이 지면에 “시는 쓸모 없는 짓”이라고 적었습니다. 시는 바로 그 쓸모 없음 때문에 읽어야 합니다. 소설가 김연수는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우리가 보낸 순간』)고 적었는데, 시는 바로 그런 것이지요.

 시는 일상의 언어를 허물고, 삶의 상투성과 한판 싸움을 벌입니다. 인간 실존에 대한 물음, 팍팍한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축약된 언어에 효과적으로 들어가 있죠. 더구나 시집은 기껏 150쪽 안팎인 데다, 가격도 7000~8000원 정도입니다. 커피 두 잔 값에 정신은 고귀해지니, 이보다 효율적인 소비 활동이 또 있을까요.

  그러면 시집은 어떻게 골라야 할까요. 막막하시다면, 먼저 ‘시인의 말’부터 펼쳐보시길. 시인들은 대개 한 권의 시집을 묶은 다음 ‘시인의 말’을 적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시집 한 권을 고도로 압축한 또 다른 시입니다. ‘시인의 말’의 여운을 헤아려보면 그 시집이 얼추 보입니다.

 이를테면 장석남 시인은 근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에서 이런 ‘시인의 말’을 적었지요. ‘이렇게, 선(線) 하나를 긋고, 나는…나를…느끼고 싶다.’ 저 문장의 고요함은 이 시집의 앞으로를 예견합니다. 이만하면 믿을 만한 시집입니다.

 당신은 지금 서점에 있습니다. 2만원 정도는 쓸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그 절반을 시집에 뚝 떼 주시길. 당신은 지금보다 조금은 나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예고. 다음 ‘문학사이’는 장석남의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사진)를 다룹니다. 예습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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