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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를 상징하는 늘 푸른 나무

중앙일보

입력

소나무와 함께 펼쳐지는 우리의 삶

소나무는 우리나라의 나무입니다. 우리나라의 산 어디에 가도 소나무는 찾아볼 수 있지요. 우리는 태어나면 소나무의 가지로 만든 금줄로 삼칠일 동안 세상에 태어났음을 알리지요.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난 우리는, 소나무로 불을 지펴 음식을 해 먹고, 소나무의 껍질이나 꽃가루에서도 많은 먹거리를 얻어내면서 살지요. 그리고 죽어서는 소나무로 만든 관에 들어가게 될 정도입니다. 우리 옛 어른들의 삶은 소나무를 떼어내고 이야기하기 힘이 들 정도이지요.

소나무는 우리나라에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가장 많이 심어져 있는 나무이지요. 게다가 우리의 정신과 문화에 있어서도 소나무와 관련된 것이 적지 않아, 우리는 소나무 문화권에서 살고 있다고 이야기해도 그리 틀지 않습니다.

지상의 소나무는 하늘로 뻗어가고
하늘의 소나무는 지상으로 뻗어와서
서로 얼싸안고 하나를 이루는 곳
그윽한 향기 인다 신묘한 소리 난다
-박희진의 '지상의 소나무는'에서

우리나라의 한시 중에는 버드나무 다음으로 소나무가 가장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 옛 시인들에게도 소나무는 어쩔 수 없이 좋은 나무였던 것이지요. 소나무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일컫는 사군자에는 속하지 않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시와 그림에는 다른 어떤 나무보다 많이 등장하고 있어요. 송죽매(松竹梅)라고 하여 소나무와 대나무, 매화를 그림을 비롯한 예술 작품 소재의 으뜸으로 쳐 왔습니다.

존송(尊松)사상으로 소나무를 귀히 여겨

조선시대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소나무를 굉장히 귀하게 여겼어요. 이른바 존송(尊松)사상을 왕조 중심으로 실천했었지요. 지난 호에서 이야기한 속리산의 정이품송도 사실은 실제로 그 소나무가 세조의 행차를 도와주었다기보다는 잘 생긴 소나무 하나에 벼슬을 내려 일반 민중들로부터도 소나무를 존중하게 만들겠다는 존송사상의 한 상징인 것이죠.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금송(禁松)령까지 내려 소나무를 베는 자는 엄벌에 처하기도 했답니다.

소나무를 보호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는 데에서부터 적극적이었어요. 이를테면 태종은 1410년, 창덕궁과 건원릉에 소나무를 심으라고 했고, 그 이듬해에는 '경기도의 장정 3천명을 동원해 남산에 소나무를 20일동안 심게 했다'는 기록까지 있습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도 소나무를 아꼈던 임금이지요. 세종도 1424년, '모든 제단 주위에는 소나무를 심으라'는 공문을 내려 보내기도 했답니다.

그림에 나타나는 소나무

그렇게 조상 대대로 보호해 온 소나무는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절개와 지조를 목숨처럼 받들었던 우리 옛 선비들에게 소나무가 귀하게 여겨질 수밖에요. 또한 언제나 예술 작품들을 가까이 했던 옛 선비들의 소장품에는 그런 까닭에 소나무가 빠짐없이 들어갔던 겁니다.

추사 김정희의 대표적인 그림 '세한도'를 생각해 보세요. 가로로 길게 펼쳐진 화폭에 가로 놓인 초가, 그 곁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매우 간략하게 그린 작품. 여기에서 소나무는 추운 겨울이 돼도 상록의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속성을 의인화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화입니다. 지조와 의리를 상징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지요.

그밖에도 이인문의 송하관폭도, 이상좌의 송하보월도 등, 소나무를 뜻하는 송(松)자가 들어간 예술작품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지요. 우리 그림에서 소나무는 호랑이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해요. 그래서 호랑이를 그릴 때 그 배경 화면에는 거의 소나무가 나옵니다. 그것은 짐승 중의 우두머리인 호랑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나무 중의 우두머리인 소나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소나무가 들어간 땅이름도 6백81곳

소나무는 신생대에 지구상에 처음 나타났답니다. 그 이후 현재 전 세계에는 약 1백 종이 자라고 있다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약 6천년 전부터 자라기 시작했고, 3천년 전 쯤부터는 한반도 전 지역으로 널리 확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백두에서 한라까지 소나무는 우리나라 땅 어디에나 잘 자라는 나무로 애국가에도 등장하게 된 겁니다. 소나무가 지명으로 쓰이는 곳도 적지 않아요. 이를테면 송림(松林)이라는 마을 이름에서부터 송악(松嶽), 송도(松都), 송도(松島) 등이 그런 것들인데, 우리나라에는 현재 681곳의 지명에 소나무가 들어가 있답니다.

소나무는 한번 베어버리면 다시 나지 않는 특징도 가지고 있어요. 구차하게 살려 하지 않는 소나무의 강직한 특성이라고 생각하며, 우리의 옛 조상들은 소나무의 이런 특징을 좋아했답니다.

어떠한 유혹 앞에도 꿋꿋하게,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어도 항상
변치 않는 푸른빛으로 결코 연약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 번 세
운 신념은 끝까지 밀어붙이고 중도에 바꾸는 법이란 없다
-김영월의 '소나무' 에서

적송(赤松)망국(亡國)론에 대하여

소나무의 특징을 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적송망국론이라 하여, 소나무는 땅 힘이 척박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소나무가 많이 자라는 곳은 나라의 힘이 모자란 곳이고, 그런 나라는 마침내 망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지요. 이같은 생각은 처음에 일본인 학자에 의해 나온 말인데, 이는 옳은 말은 아닙니다.

물론 소나무가 자라는 땅은 대부분의 침엽수가 그러하듯 척박한 땅입니다. 이같은 특징은 거꾸로 보면 적응력이 강해서 어떤 땅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요. 대체로 소나무는 땅 힘이 적고, 건조하고 바람이 강한 곳에서 자라거든요. 그러다 보니, 소나무는 나쁜 땅에서만 자란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틀린 생각이에요. 좋은 땅에서는 더 좋은 소나무가 자랄 수 있거든요.

결코 나쁜 땅을 골라서 자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나무가 많이 자라는 나라는 망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틀립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소나무가 삼나무 등과 함께 일본에 가장 많은 나무 가운데 하나이지요. 유럽에서도 핀란드, 스웨덴, 독일 등 많은 나라들이 소나무를 많이 심은 나라들입니다. 그런 나라들이 곧 망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이른바 적송망국론은 정말 근거 없는 추측에 지나지 않은 이야기이지요.

〈다음 호에는 송충이를 꿀떡 집어 삼켰던 정조대왕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고규홍(gohkh@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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