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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기자의 문학사이 ⑤ 이것은 들리는 소설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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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강현 기자

시는 종종 사운드로 결판난다. 어떤 시의 섬세한 리듬은 시적 감수성을 화끈하게 자극한다.

그렇다면 소설은? 이야기 중심의 예술 장르인 소설에 사운드가 끼어들 틈은 없다. 어떤 소설의 특정 장면에선(예컨대 주인공이 이별했다면) 특정 배경음악이 절실하지만, 텍스트 묶음인 소설은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여기, 소설에 사운드를 입힌 이가 있다. 이름은 황정은(36). 올해로 등단 8년차. 이태 전 장편 『백(百)의 그림자』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는데, 이 작가의 독보적인 발성법에 매료됐던 터였다. 그의 소설은 음악을 제 편으로 끌어들인 흔치 않은 사례였다. 이를테면 황정은의 인물들은 이런 식의 음악적 대화를 들려준다.

 ‘해 보세요, 가마. 가마. 가마. 가마. 이상하네요. 가마. 가마, 라고 말할수록 이 가마가 그 가마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죠. 가마. 가마. 가마가 말이죠.’(『百의 그림자』)

황정은

 반복되는 ‘가마’라는 말 덕분에 이 문장은 리듬감으로 충만하다. 이렇게 빚어진 사운드는 소설 속 화자의 정서를 감싸 안고, 읽는 이를 이야기 속으로 단번에 끌어당긴다.

 최근 출간된 두 번째 소설집 『파씨의 입문』(창비)에서 그의 사운드는 혁신을 거듭한다. 단편 ‘야행’에는 날카로운 전자기타 소리를 내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책.책.책.책.책.책.책.책.책.책.책.책. 엄마는 우나. 아니. 아빠는 우나. 책.책.책.책.책.책.책.책. 너무 조용하군.’

 소설은 ‘책.책.책’ 반복되는 말로만 거의 세 쪽을 채우고 있다. 친척들이 싸움을 벌이는데, 싸움 소리가 듣기 싫은 ‘나’는 시계 소리에 신경을 집중한다.

시계 소리로만 채워진 저 쟁쟁대는 문장의 사운드가 혼란스런 심리 상태를 근사하게 들려준다. 단편 ‘대니 드비토’에 나오는 ‘잔,잔,잔,잔’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나, 3년째 허공을 낙하하고 있는 주인공의 “누가 누가 누가 없어요. 나와 나와 나와 충돌해줘”(‘낙하하다’)라는 외침 소리도 인물의 극한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효과적인 사운드다.

 황정은 소설에는 구멍이 많은 편이다. 원인 모를 사건과 해결 없는 결론이 이야기랍시고 웅크리고 있다. 친척끼리 싸우는데 이유는 모호하고, 3년째 낙하만 하는데 어디를 왜 떨어지는지 모른다. 그 문학적 구멍을 그의 사운드가 메운다. 사운드 메이킹으로 이야기의 정서를 환기하고, 독자로 하여금 끊임 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이것은 들리는 소설이다. 서사의 음악, 이야기의 사운드다. 잔,잔,잔,잔, 우리는, 책.책.책.책, 황정은을, 잔,잔,잔,잔,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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