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의회 사이에 낀 ‘배곧신도시’ 이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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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시흥시에 들어서는 중형 신도시인 군자지구의 명칭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시가 한글로 된 새 이름을 지으려 하자 기존 지명을 지키려는 시의회와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명칭 논란은 다음 달 초 시의회에서 결론이 날 전망이다.

 시흥시는 지난해 9월 군자지구를 ‘배곧신도시’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배곧’은 ‘배우는 곳’이란 순우리말이다. 주시경 선생이 우리말을 연구할 인재를 기르려고 1907년에 연 국어강습소를 1914년 ‘한글배곧’으로 바꾼 데서 유래했다. 서울대 국제캠퍼스가 들어서는 군자지구의 교육도시로서 면모를 강조한 것이다. 국어학자들을 중심으로 새 이름을 환영하고 있다. 우정욱 시 정책홍보담당관은 “처음에는 ‘군자하이시티(High City)’처럼 외국어를 섞은 이름들이 제안됐지만 한글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연구 끝에 배곧이란 이름을 정했다”며 “군자면이 시흥시에 편입된 해(1914년)와 주시경 선생께서 국어강습소 이름을 ‘한글배곧’으로 바꾼 해가 같아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학식이 풍부한 사람’을 일컫는 ‘군자(君子)’와도 일맥상통한다는 게 시의 주장이다.

 그러나 원주민들과 시의회의 생각은 다르다. 100년 전부터 이어져온 지명을 버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기 때문이다. 1914년 부·군 통폐합 조치에 따라 시흥·안산·과천 3개 군이 시흥군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군자면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됐다. 이후 93년 안산이 시로 승격하면서 군자동이란 명칭은 시흥에만 남았다. 시가 이름을 결정하기 전 의회에 설명하는 절차를 밟지 않은 것도 의원들로부터 불만을 샀다. 원장희 시의회 자치행정위원장은 “오랫동안 익숙한 지명을 없애고 새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주민들의 거부감이 있다”며 “취지는 좋지만 충분한 설명과 시민 의견 수렴절차를 거친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시는 다음 달 6일 의회에 새 이름을 보고하고 명칭 논란을 끝낼 계획이다. 명칭이 확정되면 우리말 이름을 붙인 첫 신도시가 된다. 시는 세종시처럼 신도시의 도로명도 한글로 지을 계획이다. 또 아파트 이름도 한글로 짓도록 조례로 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유길용 기자

◆군자지구 도시개발사업=시흥시 정왕동 일대 인천 송도 맞은편 갯벌을 매립한 신도시. 여의도 1.5배 크기인 490만6000여㎡ 에 5만1000명(1만9600가구)을 수용한다. 올해부터 기반공사를 시작해 2014년 단지 조성공사가 끝나고 이듬해부터 입주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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