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예약 푸틴, 등 돌린 우군 어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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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3월 4일로 예정된 러시아 대통령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출마자는 모두 5명. 푸틴 총리와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위원장,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 자유민주당 당수, 러시아 2위 부호인 미하일 프로호로프, 세르게이 미로노프 전 상원의장이다. 여론조사 결과 2000년부터 8년간 대통령으로, 곧이어 총리로 4년간 러시아를 통치했던 푸틴의 당선이 확실해 보인다. 그가 1차투표에서 과반 득표로 당선하느냐, 아니면 3월 25일 결선투표까지 가느냐가 관건이다. 1차투표에서 과반을 겨우 넘기거나 결선투표까지 가서 당선될 경우 그의 추진력은 예전 같지 않을 전망이다.

 대선의 공정성도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다.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부정선거 논란으로 반정부 시위가 촉발됐기 때문이다. 총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온 야블로코당의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당수의 경우 지난달 후보 추천인을 채우지 못해 아예 출사표를 던지지도 못했다. 원래 러시아 대선 출마에 필요한 추천인 서명 수는 10만 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푸틴 대통령 시절 200만 명으로 늘었고, 서명을 받는 기간도 한 달로 단축됐다. 카네기 모스크바센터의 니콜라이 페트로프 연구원은 “연말연시 연휴를 끼고 혹한의 날씨 속에 한 달간 200만 명의 서명을 모으는 일은 웬만한 조직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선 득표율이 4% 이상 예상되는 야블린스키가 출마할 경우 푸틴의 1차투표 승리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음모설에 무게를 실었다. 푸틴에게 비판적인 방송 진행자가 하루아침에 교체되는 일도 벌어졌다.

 푸틴은 ‘안정과 성장’을 내세우며 1차투표에서 당선을 확정한다는 전략이다. 푸틴 측은 “소련 붕괴 후 혼란을 수습한 지도자가 푸틴”이라며 사회안정을 원하는 국민정서에 호소하고 있다. 꾸준히 70~80%의 지지율을 받았던 푸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은 9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다. 불만의 중심에는 ‘신흥 중산층’이 자리 잡고 있다. 특정 지지 정당이 없는 이들은 대부분 도심에 거주하는 전문직 젊은 세대다. 월평균 소득이 1000달러 이상으로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10~20%를 차지한다. 푸틴 대통령 시절 러시아 경제성장기의 최대 수혜자인 이들이 푸틴의 대통령 3선 도전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푸틴은 선심성 공약을 정리한 논문 다섯 편을 발표하며 민심 달래기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발표한 첫 논문에서는 압제적인 현재의 공권력 시스템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적법한 비즈니스와 싸우는 공권력이 아니라 이를 보호하고 지원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달 30일엔 고급 승용차와 호화 아파트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 빈부격차를 줄이고, 공무원 부패 퇴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또 이달 6일엔 “인터넷에서 10만 명 이상의 서명을 얻은 사회적 안건은 의회에서 반드시 검토하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하겠다”는 제안도 내놨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선거 포퓰리즘에서 푸틴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차기 내각에 야권 인사들을 대거 중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푸틴의 공약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다고 한다.

 푸틴이 집권 통합러시아당과는 철저하게 거리를 두는 전략을 구사하는 점은 흥미롭다. 직접 국민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국민 사이에 인기가 높은 노동운동가와 학자, 의사 등을 동원한 조직(국민전선)을 기반으로 선거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3월 대선 이후 푸틴이 통합러시아당을 해체하고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러시아 역사가이자 옐친의 전기작가인 레온 아론은 최근 포린폴리시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선거 기간의 민주화 물결은 푸틴의 향후 정책노선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푸틴이 당선하겠지만 6년 뒤 연임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대선=직접선거로 치러지며,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당선된다. 1차투표에서 당선자가 없을 경우에는 상위 두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른다. 대통령 임기는 2008년 개헌을 통해 기존의 4년에서 6년으로 늘어났다. 한 차례만 연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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