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바람 난 아줌마들

중앙일보

입력

동화 작가를 꿈꾸는 신민자씨(오른쪽)와 영화에 빠진 김진희씨는 줌마네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놀거리’를 만드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눈 녹은 물이 똑똑 떨어지던 2월 어느 날, 마포구 연남동 골목길 끝 2층 집의 대문을 삐그덕 열었다. 커다란 창문에 쓰인 ‘줌마네에 오면 무거워도 날 수 있어요’란 문구가 손님을 먼저 맞는다. 줌마네는 주부들을 비롯한 여성들이 글에 목을 축이고, 각자 꿈을 향해 힘찬 날개 짓을 하는 공간이다.

올해로 11년을 맞은 ‘아줌마들과 소녀들의 스토리공방’ 줌마네는 ‘마음반 1기’란 글쓰기 프로그램으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현재는 글쓰기 반인 ‘산책하는 글쓰기’ 외에도 사진 수업, 영화 수업으로 영역을 넓혀나 가며 아줌마들 자아 찾기의 장(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곳의 특징은 모든 기획과 운영을 아줌마들 스스로 한다는 점이다. 글쓰기 수강생으로 줌마네를 찾았다가 3년째 이곳을 놀이터 삼은 김진희(41?경기도 평택시)씨와 신민자(37?고양시 일산서구 일산3동)씨는 운영위원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세 아이와 남편에게 맞춰 살다 보니 삶이 우울해지더군요. 이곳에 와서 글을 쓰면서 가족이 원하는 모습과 내가 원하는 모습을 절충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은 가족 모두가 저를 이해하고 응원해줍니다.”

김씨의 이야기에 옆에 있던 신씨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글쓰기는 주부들이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자아 찾기 방법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노트와 연필만 있으면 어디서나 시작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듣고 보니 딱 맞는 말이다.

마흔을 앞둔 김씨에게 글은 낯선 단어였다. 단지 온라인 카페에 덧글을 쓰며 느꼈던 소소한 재미가 전부였다. 주변 사람들의 격려에 힘입어 덜컥 글쓰기 반에 등록했다. 상황을 묘사하는 짧은 글을 써나가는 동안 차츰 세상이 다르게 보였고, 글의 맛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김씨는 내친 김에 그해 겨울 줌마네 영화학교에도 등록했다. 김씨의 처녀작은 ‘여자가 휘파람을 분다’였다. 단 한 문장에서 출발한 상상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콘티를 짜고, 촬영에 돌입했다. 정류장에 친구를 세워두고, 건너편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자니 흘깃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정신 없이 현장 촬영을 마치고 편집이 시작됐다. 김씨는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면 이런 감정이 들겠구나 싶더군요”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함께 영화를 공부한 동기들과 올해는 초단편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스터디를 하고 있다.

신씨와 김씨는 줌마네 글쓰기 동기생이다. 신씨는 마음속에 동화작가란 목표를 세우고 줌마네에 방문했다. 그 해 가을 우연히 지인과 마로니에 전국여성백일장에도 참여했는데 덜컥 동화부분 장원을 수상했다. 신씨는 “본격적으로 동화를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았다”고 한다. 신씨는 동화작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주부들을 모집해 글쓰기 반을 꾸려갈 생각이다.

올 봄이면 두 사람이 기획한 일들이 차츰 선을 보이게 된다. 먼저 신씨가 기획한 동화작가반이 8주 과정으로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한다. 김씨는 ‘랩 학교’를 기획했다. 일상생활을 소재로 랩 가사를 써보고, 실제 랩을 해보기까지 하는 창작반이다. 이 외에도 ‘해뜬날(해보고 싶은 것을 뜬금없이 해보는 날)’이란 하루 특강 프로그램도 있다.

줌마네 이숙경 대표는 “주부들이 세상을 보는 힘을 길러주는 도구로 글만한 것이 없다”라고 믿는다. 그 믿음이 지금 김씨와 신씨 그리고 줌마네를 거쳐간 수많은 주부들에게서 푸릇푸릇한 싹으로 자라고 있다.

눈에 띄는 주부 글쓰기 강좌

● 줌마네=입문 강좌인 ‘산책하는 글쓰기’는 5월부터 시작한다. 주 1회 산책하면서 글을 써보는 가벼운 수업이다. 수시 참여할 수 있으며 수강료는 월 12만원. 랩을 배우며 가사를 써보는 랩 학교는 3월 9일, 동화강좌는 4월, 글쓰기 심화반 인터뷰 강좌는 5월 개강한다. 랩 학교 수강료는 20만원(회원 12만원)이다. 온라인 카페(cafe.naver.com/zoomanett)에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 상상마당 아카데미=다양한 글쓰기 강좌 중 주부에게 추천할만한 강좌는 ‘수상한 독서클럽’과 ‘여행작가’ 과정이다. 모두 4월 둘째 주 개강 하고, 10주 교육에 25만~30만원의 수강료가 있다. 한 달 반 전에 홈페이지(www.sangsangmadang.com)를 통해 신청 받는다. 3월에는 푸드칼럼니스트 과정인 ‘소울레시피’가 신설된다.

● 연희문학학교=‘시창작교실’과 ‘소설창작교실’이 3월 6일부터 13주 코스로 열린다. 원종국 소설가와 박형준 시인이 강사로 나서고, 매주 화요일 오후 7시에 수업이 진행된다. 20~26일까지 홈페이지(cafe.naver.com/seoulartspaceyeonhui)에서 선착순 20명을 모집하며, 수강료는 10만원이다.

● 한국여성문예원=30~50대 주부 대상의 생활형 글쓰기 강좌 ‘통하는 글쓰기’반을 3월에서 5월까지 연다. 30명 정원으로 수강료는 월 3만원. 수강신청은 충무아트홀 아카데미 접수처(02-2230-6651)에서 받는다.

<강미숙 기자 suga337@joongang.co.kr 사진="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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