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꼭 우리 삼촌 같다, 짝퉁 이소룡 얘기, 웃음보 터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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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2
천명관 지음, 예담
각권 412·374쪽
각 권 1만2800원

이 소설을 거꾸로 읽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2권 맨 뒤에 적힌 ‘작가의 말’부터 엿보기로 한다. 천명관(48)은 여기서 자신의 소설론을 설파한다.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실패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이 끝나고서야 나오는 이 진술에는 소설을 쓰는 작가의 태도가 드러난다. 그러니까 그는 실패한 사람들이 계속 살아나갈 수 있도록 ‘공감의 소설’을 쓰는 작가다. 그러니 공감의 안테나로 이 소설을 추적하는 건 온당한 독서법이다. 더구나 장편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천명관의 공감의 능력치가 극점에 이른 소설이다.

 그의 소설론을 따라, 실패한 인생이 주인공이다. 브루스 리(이소룡)를 흠모했으나, 끝내 추종과 이미테이션에 그쳤던 한 짝퉁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조카 상구가 진술하는 삼촌의 인생역정이 소설의 큰 줄기다. 때는 무협 스타 이소룡이 사망한 1973년. 고등학교 2학년 삼촌이 이소룡 추모제를 지내는 장면으로 소설이 문을 연다. 70년대 대개의 젊은 치들이 그러했듯, 삼촌은 이소룡의 추종자였다. 실제 이소룡을 흠모하며 남몰래 절권도를 연마하기도 한다. 삼촌은 서자(庶子)였는데, 태생부터 실패한 인생 축에 속했던 그는 영웅 이소룡을 좇아 저 높은 곳으로 비상하고자 한다.

 삼촌의 이야기는 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식 근대화의 거친 장면들과 겹쳐지면서, 읽는 이의 공감을 끌어낸다. 이를테면 시골을 떠나 서울로 온 삼촌은 중국집 배달부로 터전을 닦는데, 불현듯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고, 충무로 대역배우로 삶이 번지기도 한다.

 삼촌의 삶이란 게 남달리 굴곡져 보이긴 해도, 그 시절을 통과해 온 우리라고 크게 다르겠는가. 산업화-군사독재-민주화-신자유주의로 이어지는 스텍터클 대서사는, 삼촌을 포함한 이 땅의 장삼이사에게 기막힌 열패감을 안겨줬던 뒤틀린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삼촌이 추앙했던 이소룡은 생전 이런 말을 남겼다. ‘산다는 건 순전히 사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이소룡은 어떤 삶의 이상일 테다. 그런데 그 이상적 인물이 하는 말이 고작 이것이다. 실패하고 넘어져도 그저 살아가는 일, 그게 삶이라는 게다.

 아마도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이런 말을 하려 했던 것 같다. 삶이 버거우십니까. 여기, 실패한 짝퉁 인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짝퉁에게 진짜 인생처럼 보였던 이소룡도 그럽디다. 인생이란 넘어지고 일어나며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작가는 이 당연한 진리를 능청스런 이야기로 풀어냈다. 조각한 듯 세밀한 캐릭터와 걸쭉한 입담이 맞물려 참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탄생했다. 저 삼촌은 꼭 우리 삼촌인 것만 같고, 저 조카는 꼭 우리 조카인 것만 같다. 천명관의 소설은 늘 실패한 자들과 손을 잡았다. 이번에도 그는 우리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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