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를 운영하는 숙명학원이 15년간 대학에 보내온 법인 전입금 685억원이 알고 보니 동문이나 기업이 모은 기부금이었다고 한다. 대학이 기부금을 모아 법인으로 넘기면 다시 법인은 전입금 형식으로 대학에 지원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기부자가 낸 돈을 가지고 법인이 전입금을 주는 등 온갖 생색은 다 낸 셈이다. 더욱 부끄러운 일은 106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교육기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대학이 동네 구멍가게가 아닌데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편법이 벌어진 건 안타깝기까지 하다.
법인 측은 이 기부금을 엉뚱한 곳에 유용한 게 아닌 만큼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이 돈은 학생들의 교육에 쓰였으며, 다만 돈의 흐름상 법인을 거쳤으므로 회계 부정이 아니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그런데 법인이 외부 기부금을 받아 마치 건실한 법인인 양 매년 수십억원씩 학교에 전입금을 척척 낸 것처럼 위장했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다. 심지어 이 법인은 1998년 이후 교직원의 4대 보험료처럼 법적으로 부담해야 할 법정부담금은 한 푼도 안 냈다. 이 돈이 결국 학생들이 낸 등록금 등으로 이뤄진 교비 회계로 충당됐다고 한다.
감사원이 지난해 실시한 등록금 감사에서도 나타났듯 한국의 일부 사학 법인들은 대학 위에 군림만 하고, 책임을 다 하지 않고 있다. 교수 채용이나 인사에는 개입해 큰소리를 치면서도 정작 법정부담금을 제대로 내고 있는 곳은 지난해 기준으로 다섯 곳 중 한 곳(18%)에 불과하다. 이런 몰지각한 사학 법인들 때문에 선량한 법인들이 비리 사학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숙명학원은 이번 일에 대해 학생들에게 실상을 알리고 사죄해야 한다. 법인이 보유한 부동산 등 재산을 팔아서라도 부담금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등록금 등으로 이뤄진 학교 교비로 때우는 건 책임 있는 법인의 자세가 아니다. 이런 식의 기부금 세탁은 기부자의 고귀한 뜻을 더럽히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