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명문여대 법인의 부끄러운 기부금 세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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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숙명여대를 운영하는 숙명학원이 15년간 대학에 보내온 법인 전입금 685억원이 알고 보니 동문이나 기업이 모은 기부금이었다고 한다. 대학이 기부금을 모아 법인으로 넘기면 다시 법인은 전입금 형식으로 대학에 지원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기부자가 낸 돈을 가지고 법인이 전입금을 주는 등 온갖 생색은 다 낸 셈이다. 더욱 부끄러운 일은 106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교육기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대학이 동네 구멍가게가 아닌데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편법이 벌어진 건 안타깝기까지 하다.

 법인 측은 이 기부금을 엉뚱한 곳에 유용한 게 아닌 만큼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이 돈은 학생들의 교육에 쓰였으며, 다만 돈의 흐름상 법인을 거쳤으므로 회계 부정이 아니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그런데 법인이 외부 기부금을 받아 마치 건실한 법인인 양 매년 수십억원씩 학교에 전입금을 척척 낸 것처럼 위장했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다. 심지어 이 법인은 1998년 이후 교직원의 4대 보험료처럼 법적으로 부담해야 할 법정부담금은 한 푼도 안 냈다. 이 돈이 결국 학생들이 낸 등록금 등으로 이뤄진 교비 회계로 충당됐다고 한다.

 감사원이 지난해 실시한 등록금 감사에서도 나타났듯 한국의 일부 사학 법인들은 대학 위에 군림만 하고, 책임을 다 하지 않고 있다. 교수 채용이나 인사에는 개입해 큰소리를 치면서도 정작 법정부담금을 제대로 내고 있는 곳은 지난해 기준으로 다섯 곳 중 한 곳(18%)에 불과하다. 이런 몰지각한 사학 법인들 때문에 선량한 법인들이 비리 사학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숙명학원은 이번 일에 대해 학생들에게 실상을 알리고 사죄해야 한다. 법인이 보유한 부동산 등 재산을 팔아서라도 부담금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등록금 등으로 이뤄진 학교 교비로 때우는 건 책임 있는 법인의 자세가 아니다. 이런 식의 기부금 세탁은 기부자의 고귀한 뜻을 더럽히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