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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숫자 더 늘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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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오늘의 한국 사회가 직면한 숱한 문제들을 누가, 어떻게, 누구를 위하여 해결할 것인가? 우리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이유는, 개인들의 공통적인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려는 필요성 때문이다. 정부를 포함한 많은 공공기구들은 그런 이유로 탄생했다. 달리 말하면 공공기구들은 우리네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들의 기관인 것이다. 그 기구들이 역할을 잘하면 우리 삶은 그만큼 평안하고 안온해진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왜 이리 문제가 많고, 평민들의 삶은 왜 이리도 힘겨운가? 한마디로 우리들의 기관들이 우리를 위해 일하지 않거나, 평민들의 문제를 모르거나, 그로부터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해답의 단초는 찾은 것 같다. 즉 공공기관들이 우리네 문제를 잘 알게 하거나, 우리를 위해 일하게 하면 된다. 또 우리 문제를 잘 아는 사람들이 기관들에 많이 들어가거나, 우리들이 직접 거기에 참여하면 된다.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요체는 정치 문턱을 대폭 낮추고 바른 정치를 키우는 것이다. 그 지름길은 바른 대표와 의회 확대에 있다. 근대 민주주의의 역사는 곧 대표기구의 규모·절차·구성·역할의 발전사라고 할 수 있다. 통계를 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의원 1인당 평균 인구수는 9만8000명이다. OECD국가 중 유럽 국가 평균은 5만 명, 단원제 국가 평균은 6만2000명이다. 한국은 16만2000명이다. 선진 민주국가들에 비해 너무 적은 의원 숫자다. 만약 한국의 의원 숫자를 OECD, OECD 유럽국가, OECD 단원제 국가 평균에 맞추려면 각각 510명, 997명, 802명에 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의원 수는 고작 299명이다.

 한국에서 의원 숫자가 이토록 축소된 연유는 5·16 군사쿠데타 때문이었다. 한국 의회는 건국 이래 계속 인구 10만 명당 1인의 규모였으나 1961년 5·16 쿠데타로 인해 인구 20만 명이 기본단위가 되었다. 그리하여 6대 국회는 5대에 비해 의원 수가 무려 116명이나 축소되고 말았다. 의회민주주의를 극도로 탄압한 군사정부에 의해 위축된 한국 의회는 건국헌법의 정신을 살리고, 선진 민주국가의 규모를 갖추려면 대폭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현재의 의회 규모로는 한국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대표·반영·해결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의회 확대는 복합적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대표성과 민주성의 결정적 제고다. 의회를 정치·언론·대학·법률·기업 영역의 ‘성공한 소수의 남성 엘리트들’의 과점기구로부터 여성·평민·노동자·농민·비정규직·실업자·장애인·하층·청년학생의 대표들이 다수 참여하는, 즉 엘리트 대의기구가 아니라 국민의회·평민대의 기구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네 삶의 문제를 대표하고 해결하는 의회를 가질 수 있다. 대표성과 민주성이 높은 나라들이 한결같이 공공성·평등성·복지성에서도 크게 앞서는 이유는 대표들이 평민을 위한 법률과 정책을 선택하기 때문이다.(한국은 여성 의원의 비중 역시 너무 낮다: 북구 42%, 유럽 22%, 아프리카 20%, 아시아 18%, 한국 14.7%, 아랍 11%. 선거권 연령 또한 한국·일본을 제외한 모든 OECD 국가는 18세 이하다. 한국은 선거권 연령을 18세로 낮추어야 한다.)

 둘째는 대표와 의회 확대를 통한 재벌과 언론 견제다. 대표의 확장 없이 소수 재벌과 보수언론 중심의 왜곡된 경제체제와 담론 지형을 교정할 수는 없다. 즉 현재의 의회 규모로 압도적인 재벌경제체제와 보수담론체제를 넘어 복지·형평·참여·민생·평민 문제를 제대로 대의하고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셋째,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력에 따른 대통령·검찰·행정부·금융기관·감독기구의 실패·부패·전횡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이들을 견제하는 문제는 한국민주주의의 사활적 과제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보여주듯 국민 대표 참여를 확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물론 이상의 대안은 한국 의회의 현실에 비추어 깊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다. 이를테면 의회 확대는 의회의 연중 상시 개원 및 상원-하원 분리, 의원들의 각종 특권의 철폐 및 부패방지 조처와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끝으로 한국 의회예산 규모는 결코 크지 않다는 점을 첨언한다. OECD와의 비교는 물론, 우리나라 중간 규모의 기초단체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국회 4395억원, 광명시 4467억원, 안성시 4489억원, 성남시 2조2932억원, 수원시 1조5229억원. 이상 2009년)

 정치가 심히 조롱받고 폄하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지배적 담론과는 크게 다른 이상의 부족한 소견에 대한 많은 토론을 기대한다. 폭넓은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