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담배 끊으니, 아이들 기침 딱 멈췄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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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우림루미아트아파트의 신선옥(48·여)씨. 2009년 아파트 단지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후 남편이 금연을 시작했다. 남편은 외부로 나와 한두 번 담배를 피우다가 불편함을 견디다 못해 담배를 끊었다. 이웃들이 잘했다고 칭찬해 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아빠가 금연에 성공하자 감기를 달고 살던 아이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건강해졌다.

 신씨는 “담배 냄새가 나거나 옷에 묻어 있는 담배 성분 때문인지 아들의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며 “이 때문인지 계절마다 감기에 걸렸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우림루미아트아파트는 우수 금연아파트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김현주씨는 “담배 연기 없이 마음 놓고 아파트 단지를 다닐 수 있어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수정 인턴기자]

 공공장소뿐 아니라 동네로 금연이 확산되고 있다. 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간접흡연 노출 빈도가 가장 높은 장소는 직장이고, 그 다음이 가정이다. 면역력이 약한 여성과 자녀가 담배 독성에 쉽게 노출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는 2007년 금연아파트 제도를 도입해 지금까지 169개 아파트를 인증했다.

 금연아파트로 인증 받으면 지하주차장·계단·복도 등 공동생활 공간이나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 아파트 벤치마다 금연 스티커가 붙어 있고, 현수막도 곳곳에 걸려 있다.

 금연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 만족도는 매우 높다. 서울시와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2010년 금연아파트 주민 410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80%가 금연아파트 지정 후 간접흡연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67.2%는 건강한 환경 조성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가정에서의 간접흡연은 아이들에게 특히 해롭다. 미국 샌디에이고대 연구진은 1세 미만 자녀를 기르고 있는 49개 가구의 간접흡연 위험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부모가 실내에서 흡연하지 않더라도 외부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면 비흡연자 부모를 둔 아기보다 몸 속 니코틴 대사물질 ‘코티닌’ 농도가 8배 높았다(‘네이처’ 2008년).

 하지만 금연아파트에서는 이런 건강 위해 요인을 확 줄일 수 있다. 금연아파트 내 흡연자들은 대부분 금연을 하거나 담배 피우는 빈도를 줄였다.

 서울 강서구 대림경동아파트의 신명자(65·여)씨는 “불과 6개월 전만 하더라도 매일 앞마당에서 담배꽁초 30여 개를 치워야 했지만 요즘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우림루미아트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현주(38·여·서울 관악구)씨는 “몸에서 나는 담배 냄새가 싫다고 예리(딸·9)가 이야기해도 남편이 담배를 끊지 않았는데 금연아파트로 지정된 후 흡연량이 3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금연아파트의 재인증률이 높다는 점도 눈 여겨 볼 만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2009년 금연아파트로 인증 받은 86곳 중 80곳이 올해 재인증을 받았다. 93.1%에 달하는 수치다.

 재인증을 받기 위해선 주민들의 동의와 함께 금연자율운영단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 금연을 잘 지키고 있는지 서울시의 현장 검사도 통과해야 한다.

 처음에는 흡연자들의 반발이 심했다. 자신의 집에서조차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계속 담배를 피우는 주민도 있었다. 하지만 2년 정도 지나면서 금연아파트 지정은 실제 금연 효과로 이어졌다.

 대림경동아파트에서 손자와 함께 살고 있는 조옥선(58·여·서울 강서구)씨는 “예전엔 단지 내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연기를 피하려고 손자 얼굴을 감쌌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금연아파트 지정 후 주민들 사이에 많았던 담배 분쟁도 줄었다. 대림경동아파트 8층에 살고 있는 박대광(58)씨는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우길 부탁해도 기분 나쁘다며 오히려 면박을 주는 사람이 많았다”며 “금연아파트 지정 후 금연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겨 편하다”고 말했다.

 실제 금연아파트 지정 후 관리사무소에 접수된 담배 관련 민원은 월 14건에서 3건으로 줄었다. 늦은 저녁 아파트 내 놀이터 쓰레기통에 있던 담배꽁초들도 거의 사라졌다.

 외국에서는 금연아파트 제도가 이미 시행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벨몬트시는 2007년부터 시내 공공지역을 금연구역으로 정하고 주거지역(단독주택 제외)에서 흡연을 규제했다. 미국 부동산 개발회사 릴레이티드(Related)는 뉴욕 맨해튼에 소유한 17개 빌딩과 아파트 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했다. 입주자는 금연하겠다는 서약을 반드시 해야 한다.

권병준 기자
사진=김수정 인턴기자

금연아파트는=지하주차장·계단·복도 등 단지 내 어디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는 아파트를 말한다. 주민이 50% 이상 동의해 신청하면 인증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서울시는 인증 아파트에 팻말과 스티커를 제공한다. 필수금연구역 관리, 자율운영단 구성 여부 등을 평가해 2년마다 재평가한다. 현재 서울시 금연아파트는 169단지다. 단 담배를 피우더라도 벌금 같은 처벌조항은 없으며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금연을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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