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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내 권리 주장하는 조례로 학교 망가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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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서울시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통과시킨 민주통합당 소속 시의원들과 교육의원들이 지난주 말 교권조례를 발의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발의·통과·공포됐던 지난 한 달간 교권 추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자 이번엔 이들이 조례를 통해 교권을 보호해 주겠다고 한다. 시의원들은 “두 조례가 시행되면 학교의 두 축인 학생과 교사의 권리가 보호돼 학교 교육이 안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궁색한 변명이며,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다.

 게다가 이들이 만든 교권조례는 학생인권조례를 빼닮았다. 권리는 과도한 반면 책임과 의무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교원은 교육행정기관, 학교 관리자로부터 부당한 지시나 사적인 요구를 받지 않고, 교육과정 재구성·교재 선택·학생 평가에서 자율권을 갖는다. 학교 운영과 교육활동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으며, 노동조합·교원단체 가입의 자유도 있다. 교육감이나 학교장도 교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위원회를 만들어 애를 써야 한다. 이에 비해 교원의 책무에 관한 조항은 동료 교사와 학생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딱 한 구절에 그친다.

 학생의 인권 못지않게 교권은 보호받아야 한다. 갈수록 흉포화하고 있는 학교폭력에서 일반 학생들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그런데 시의회가 이렇게 조례를 남발하게 되면 교육의 주체인 학생이나 교사가 각자 자기 권리만 앞세울까 우려된다. 이렇게 된다면 정말 학교는 망가진다. 지금 학교에서 요구되는 모습은 내 권리 이상으로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며, 공동체 안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성숙한 인간상이다. 학생과 교사들만 권리를 주장하다 보니 학부모들의 권익이 침해된다는 말이 나온다면 시의회는 학부모 조례도 만들겠는가.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상호 신뢰와 존중이 바탕이 돼야 진정한 인권 보호가 가능하다. 조례를 만들어 권리를 주장하게끔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서울시교육청과 시의회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제동을 건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조례 모두를 재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