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북정책 공유 가능성 보여준 ‘한반도 포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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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북정책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아 우려된다. 천안함 폭침과 관련한 보수·진보 진영의 시각 차이는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형국이다. 특히 4월 총선이나 12월 대선에서 여야가 바뀐다면 MB정부의 대북정책은 완전히 부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더욱 그렇다.

 1987년 이후 세 번의 보수정권과 두 번의 진보정권을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는 대북정책에 대한 공통분모를 한 가지라도 찾아내기는커녕 갈등을 확대·심화시켜 왔다. 이래서는 일사불란한 북한을 상대로 국익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위험한 수준은 아닐지라도 앞으로 ‘분단체제의 종식’ ‘남북연합 추진’ ‘북핵 사실상 용인’ 등의 움직임이 구체화된다면 회복 불능의 상황이 올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에서 그제 열렸던 제3회 ‘한반도 포럼 학술회의’는 대북정책 접점 찾기의 사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세미나였다.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 요인 중 대표적인 것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했던 ‘10·4 선언’의 이행문제였다. 진보 측은 이 선언의 전면적이고 조속한 이행을, 보수 측은 비용이나 안보 등을 고려한 신중한 대처를 각각 주장해 왔다. 문제는 양측이 이 선언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검토 없이 ‘이행이냐, 아니냐’의 명분에만 집착해 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구체적 대목을 놓고 토론이 벌어지자 접점이 예상보다 쉽게 잡혔다. 조동호(이화여대) 교수는 10·4 선언 합의 내용 중 일부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했다. 문산~봉동 간 화물열차 운행에 합의했지만 봉동에는 역이 없다, 남포와 안변에 조선단지를 건설한다고 했지만 남포는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고, 안변은 한국사람이 한 명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는 등 타당성 조사도 없이, 게다가 민간기업이 해야 할 일을 정부가 무턱대고 합의한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진보 성향의 박명림(연세대) 교수를 비롯한 많은 참석자가 동의했다. 박 교수는 “6·15 공동선언에 평화나 군축이 한 자도 들어가지 않은 것을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비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남북경협은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용적 측면에서 제대로 해야 한다”는 조 교수의 주장에도 양문수(북한대학원대학) 교수 등 주제발표·토론자들이 공감을 표시했다. 또 지속적인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도 공통분모였다. 이렇게 구체적 대목을 놓고 합리적으로 토론하다 보면 접점이 도출될 수 있는 것이다.

 박 교수는 “평화공존, 화해협력, 반핵, 세습비판, 인도적 지원을 대북정책의 최소 기준으로 삼고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자”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보수·진보 진영이 이 같은 토대 위에서 이성적 토론을 펼쳐 남남갈등이 줄어드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