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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기자의 문학사이 ③ 문인수 시집 『적막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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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문인수

친지의 예고된 죽음을 듣는다. 머리 속에서 암이 자라고 있다고 했다. 지구상에 이 죽음을 멈출 방법은 없다. 시한부. 죽음의 초침은 다급하다. 아, 야속한 초침 소리. 죽음의 시간은 다가오고 가까운 이들은 눈물을 흘린다.

 문인수(67)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적막 소리』(창비)에서 어떤 죽음과 마주친다. 이 시집엔 참 많은 죽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시인은 단호하다. 죽음 앞에서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죽음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친지의 예고된 죽음에 목놓아 울던 차에, 시인에게 한 수 배웠다. 시인이 진술한 몇몇 죽음을 옮긴다.

 죽음 하나. ‘이제,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세요. 지금, 어머니를 심는 중……’(‘하관’ 전문)

 알겠다. 시인이 숱한 죽음을 노래하기까지 이런 사연이 있었던 게다. 시인의 어머니가 흙으로 돌아갔다. 시인은 어머니를 흙에 심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비는 것이다. 다시는 그 무엇으로도 피어나지 마소서. 어머니의 고된 생을 지켜본 까닭일까. 아들은 단호한 끝맺음을 바란다. 야속하지만 수긍이 간다. 어머니의 죽음은 어머니의 고통스런 삶이 마침내 끝났다는 증거니까.

 죽음 둘. ‘야, 딸아야, 일어나!//그 엄마는 오늘 아침에 또/스물두살 ‘아이’의 방을 바라 큰 소리를 질렀다//…//풀썩, 그 엄마의 무릎을 꺾는/저, 죽음의 팔힘/참, 너, 죽었지…’

 제목이 ‘산 증거, 혼잣말’이다. 스무두살 ‘아이’의 방은, 그 딸이 ‘살았었다’는 증거다. 그런데 그 산 증거는 곧 죽음의 증거로 판명 난다. 죽은 딸은 답이 없고, 엄마는 혼잣말을 한다. “참, 너, 죽었지.” 시인은 모질게도 시를 이렇게 끝내버렸다. 저 담담한 진술은 극한의 슬픔을 삼켜낸 것이겠기에, 삼켜버린 그 슬픔이 아른거려 그만 눈물이 고였다.

 이런 시들은 참 고맙다. 대신 아프고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아서. 고마운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지의 사연도 들려줬다. 시인은 시 한 수 읊듯 말했다. “살았기 때문에 죽는 것이죠. 죽음은 삶을 증언하는 아름다운 증거에요.” 이 대목에서 마음이 무너졌다. 죽음은, 그러니까 ‘산 증거’라는 게다. 이 세상을 다녀갔다는 증명서, 삶의 한 절차.

 그러나 산 자의 편에선 그렇게만 볼 순 없는 노릇이다. 산 자에게 죽음이란 누군가와의 영원한 결별이니까. 담담히 죽음을 노래하던 시인도 끝내 그 상실감만은 감출 수 없었다. ‘동행’이란 시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사람하고 헤어지는 일이 늙어갈수록 힘겨워진다. 자꾸, 못 헤어진다.’

 어디 노(老) 시인의 이별뿐이랴. 친지는 지금 제 머리 속에 암을 기르는 중이다. 차마 못 헤어지겠다. 자꾸, 못 헤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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