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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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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덕일
역사평론가

한(漢)나라의 이연년(李延年)은 유명한 가인(歌人)이다. 『한서(漢書)』 ‘이연년 열전’과 ‘효무 이부인(孝武李夫人) 열전’은 “새롭게 소리를 바꾸어서 노래를 잘했다… 듣는 사람이 감동을 금치 못했다”고 전한다. 그는 효무(孝武:한 무제) 앞에서 춤추면서, “북방에 한 미인이 있어/ 세상과 떨어져 홀로 서있네/ 한 번 돌아보니 성이 기울고/ 두 번 돌아보니 나라가 기우네/ 성이 기울고 나라가 기우는 줄 어찌 모르랴만/ 미인은 다시 얻기 어렵기 때문이지(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難再得)”라고 노래했다. 무제(武帝)가 “좋도다. 그러나 어찌 이런 미인이 있겠는가”라고 탄식했는데, 그런 여인이 다름 아닌 가인의 누이 이연(李姸)이었다. 나라를 기울게 하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성어의 유래다.

 악인(樂人) 집안 출신이기에 이연도 가무가 뛰어났지만 요절하고 말았다. 그러자 한 무제는 거의 미쳐서 이연의 초상화를 감천궁(甘泉宮)에 걸어놓고, 방사(方士:술사)에게 반혼향(返魂香)을 피워서 그 넋을 불러들여 만났다고 전해질 정도다. 또 이부인을 애도하는 도이부인사(悼李夫人辭)를 짓고 “아름다운 사람 생각 잊을 수가 없도다(懷佳人兮不能忘)”라며 인생무상을 노래하는 추풍사(秋風辭)도 지었다. 이연년은 누이 덕분에 협률도위(協律都尉)까지 올라갔으나 무제는 세월이 흘러 이부인에 대한 그리움이 옅어지자 이연년을 다른 죄에 연좌시켜 죽였다. 마치 사랑의 무상함과 권력의 냉혹함을 보여주듯이.

 조선 후기에 서울 가객들 사이에서는 빠른 가락의 시조창(時調唱)인 신성(新聲)이 유행했는데, 신성은 원래 예부터 전해지던 고악부(古樂府)에 대비되는 노래를 뜻했다. 연암 박지원(朴趾源)은 사장(士章) 박상한(朴相漢:1742~1767)을 애도하는 ‘사장 애사(士章哀辭)’에서 “(박상한이) 한밤중에 가야금을 타면서 신성(新聲)을 변주(變奏)하는데 그 가락이 끊겼다 이어지는 것이 처량해 슬픈 감회를 느끼지 않는 적이 없었다”고 전하고 있다.

 요즘 기성 가수뿐 아니라 아마추어 가수들의 경연대회가 붐을 이루고 있다. 가인(歌人)들이 저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공자가어(孔子家語)』 ‘변악해(辯樂解)’에는 은나라 순(舜)임금이 가야금을 타면서 부른 ‘남풍시(南風詩)’가 전한다.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들의 노여움 풀어주겠구나! 남풍이 때 맞춰 붊이여. 우리 백성들의 재물을 풍성히 해주겠구나(南風之熏兮,可以解吾民之兮,南風之時兮,可以阜吾民之財兮)”라는 노래다. 개인의 감정을 표출하는 노래도 좋지만 시대와 고락(苦樂)을 함께하는 이런 노래도 들린다면 금상첨화겠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