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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봉 역전골 터지자 광팬 1000여 명 그라운드로 뛰어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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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8일(한국시간) 가봉 리브르빌에서 열린 네이션스컵 C조 경기에서 홈팀인 가봉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가봉이 추가시간에 골을 터뜨려 모로코에 3-2로 역전승했다. [리브르빌 로이터=뉴시스]
가봉의 세드릭 무밤바(왼쪽)가 28일(한국시간) 모로코의 아딜 허마치 앞에서 볼을 컨트롤하고 있다. [리브르빌 AP=연합뉴스]

올해로 27회째를 맞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은 아프리카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다. 최근 들어 관심이 커진 아시안컵과 달리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은 네이션스컵 출전을 영광으로 여긴다. 유럽리그에서 뛰는 스타 플레이어들도 이 대회만큼은 꼭 참가한다.

 올해 대회는 가봉과 적도기니가 공동 개최했으며, 예선을 통과한 16개 팀이 22일부터 열전을 벌이고 있다. 대회 공식 스폰서인 삼성전자의 글로벌마케팅실 소속으로 현지에서 활동 중인 김일두 과장의 현장 르포를 소개한다. 

 축구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고르게 사랑받는 유일한 스포츠다. 공동 개최국인 가봉과 적도기니는 인구를 모두 합쳐 20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대회 전에는 흥행 부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 모든 걱정이 기우임을 깨닫게 됐다. 공항 입국장은 각 나라 대표팀을 기다리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 또한 네이션스컵의 열기로 한껏 물들었다. 두 개최국은 자국의 경기가 열리는 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고 한다.

28일(한국시간) 리브르빌 스타디움에서 개최국 가봉과 모로코의 경기가 열렸다. 경기장으로 가는 길은 시내에서부터 꽉 막혔다. 차들이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했지만, 축구팬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 안에서는 신나는 댄스파티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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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만 명을 수용하는 리브르빌 스타디움은 경기 3시간 전부터 축구팬들로 가득 찼다. 최하 30유로(약 4만5000원)인 티켓이 사흘 전에 매진됐다고 한다. 가봉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4500달러로, 아프리카에서는 부유한 축에 속한다. 경기장 밖에서는 삼성이 제작해 무료 제공하는 네이션스컵 기념 티셔츠와 열쇠고리, 저금통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50m 이상 늘어섰다. 삼성이 리브르빌 도심에 운영 중인 축구문화 공간 ‘풋볼 페스트’ 또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2002 월드컵 기간 중 시청 앞 광장에 운집한 붉은 악마들을 보는 듯했다.

 경기 시간이 다가오면서 아프리카 특유의 타는 듯한 무더위에 축구팬들의 응원 열기가 더해지며 스타디움은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관중들 상당수는 얼굴과 몸에 다양한 그림을 그려 개성을 표출했다. 아프리카 특유의 신바람 나는 북박자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사람도 많았다. 한쪽에서는 주술사가 주문을 외는 듯한, 다소 음산한 분위기의 응원이 진행됐다. 한 무리의 팬들은 경기장 내부를 크게 돌며 박수를 치고 깃발을 흔들어 관중의 호응을 유도했다. 흥이 넘치는 그들의 경기장 문화를 지켜보며 내가 응원하는 수원 블루윙즈가 이곳에서 원정경기를 치른다면 어떤 서포팅으로 맞서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경기는 박진감 넘치게 진행됐다. 전반에 모로코가 골을 성공시킨 뒤 ‘울트라스’라 부르는 1000여 명의 원정 서포터스가 잠시 기세를 올렸지만, 이내 4만 명의 가봉 팬이 보내는 야유에 묻혔다. 후반 들어 가봉의 동점골과 역전골이 터지자 경기장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가 됐다. 순식간에 홈 팬 1000여 명이 그라운드로 난입해 잠시 경기가 중단됐다. 팬티만 입고 그라운드를 활주하는 이들도 있었다.

 모로코가 후반 막판 동점을 만들었지만 가봉이 추가시간에 골을 터뜨려 3-2로 승리했다. 환호하는 가봉 팬들을 지켜보며 ‘모로코의 승리로 경기가 끝났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아찔한 상상을 했다. 네이션스컵은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불상사도 많다. 2010년 대회에서는 개최국 앙골라로 입국하던 토고 대표팀이 앙골라 반정부 무장단체의 총격을 받아 3명이 사망했다.

 경기가 끝난 뒤 축구팬들은 피부색과 국적에 상관없이 모두가 친구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하이파이브를 건네며 거리를 행진했다. 진정한 축제의 모습이었다.

정리=송지훈 기자

수원삼성 서포터스 김일두 과장

김일두(32·사진) 과장은 못 말리는 축구광이다. 어려서부터 축구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1998년 붉은 악마 활동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매니어의 길을 걸었다.

 고종수(현 수원 코치)의 플레이에 반해 수원 삼성의 팬이 된 그는 수원 서포터스 ‘그랑 블루’에서 지원팀장, 운영국장, 회장을 역임했다. 회장 재직 중 록밴드 응원, 관현악 응원, 그랑 블루 앨범 발매 등 기발한 기획을 선보였다. 한 달 전 태어난 첫아들의 이름을 ‘수원(水原)’이라 지을 정도로 수원 사랑이 남다르다.

 지난해 1월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떠나 프로축구 세리에A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현재는 스포츠마케팅 일을 하고 있으니 김 과장의 유별난 축구 사랑을 회사도 인정한 셈이다. 김 과장은 “축구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순수한 열정이 부럽다”면서 “최근 들어 어려운 일이 많았던 한국 축구도 초심을 되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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