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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제재 동참 비용, 비싼 건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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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를 인터뷰했을 때다. 주변 얘기로 뜸을 들이다 막판에 정말로 묻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갖고 있나?” 올메르트 전 총리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답했다. “우리는 핵무기를 도입하지(introduce) 않았으며, 북한을 포함한 어떤 국가도 중동 지역에 핵무기를 확산시키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해 노력할 것이다.” 한 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힘이 느껴지는 답변이었다. 대답하는 동안 한순간도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고 기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서슬 퍼런 기세에 주눅이 들 정도였다.

1년이 훨씬 지난 요즘 올메르트 전 총리의 그 답변이 부쩍 자주 생각난다.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이란 핵사태’ 때문이다. “어떤 국가도 중동 지역에 핵무기를 확산시키지 못하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해 노력할 것”이라는 그의 대답은 지금 상황에서는 이란을 정면으로 겨냥한 선전포고로 들린다. 올메르트가 ‘모든 방법’이라고 언급한 수단은 올 들어 이스라엘 대통령과 국방장관 등 정부 고위인사들의 입을 통해 ‘군사적 공격’이나 ‘국지(局地) 공격’ 등의 용어로 구체화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아는 미국도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발벗고 나선 건 당연한 일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앞장서 이란 원유 금수조치를 취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특히 미 의회가 이란 제재 방안을 포함한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한국도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7월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

당장 막대한 손실이 예상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란 경제제재에 동참해야 한다. ‘핵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금융전쟁’ 외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란이 쉽사리 금융전쟁에 항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이미 국제사회는 이란과의 핵물질 관리 방안에 대해 합의한 경험을 갖고 있다. 2010년 5월 17일, 터키와 브라질이 이란과 함께 도출해 낸 합의안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이란은 국제사회의 예상을 뒤엎고 터키와 브라질의 중재로 자국의 3.5% 농도 우라늄 1200㎏을 터키로 반출하고 대신 자국의 의료용 원자로 가동에 필요한 20% 농도 우라늄 120㎏을 받는 교환안에 합의했다. 이는 서방 세계가 이란에 제시한 농축 우라늄의 국외 반출 방안을 이란이 받아들인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바로 다음 날 러시아·중국과의 막후 합의를 통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이란의 핵개발에 대한 추가 제재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란의 양보를 유엔 제재를 무마하기 위한 시간벌기용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간벌기용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당시만 해도 이란이 보유한 농축 우라늄은 3.5% 농도였다. 핵무기 원료로 사용 가능한 90% 농도에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서방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언젠가는 핵무기 제조에 악용될 수 있다며 이란 농축 우라늄의 국외 반출을 추진했다.

이제 사태는 훨씬 심각해졌다. 올해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이 농축도 20%의 우라늄 생산에 들어간 것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강력한 제재의 당위성이 인정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제제에 따른 손익계산서를 따져보면 손해 항목이 너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대체 원유 확보가 시급해졌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공급 부족 우려를 불러 국제유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란은 한국에 70억 달러가 넘는 황금시장이다. 이란에 진출한 한국 기업만 2000개가 넘는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대이란 경제 제재에 동참할 경우 손실액이 1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란과의 외교관계에도 생채기가 날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이란이 핵무기 보유사실을 발표하고, 이스라엘과의 전쟁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때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계산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원유를 전량 수입하고, 수출에 의존해 살림을 꾸려가는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시나리오다.

최근 국제사회의 압박이 강해지면서 조금씩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이란이 잇따라 서방세계에 협상 재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완전한 사태 해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 길을 가는 동안 지불하는 비용도 만만찮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비용은 반드시 내야 할 보험료다. 큰 돈이긴 하지만 절대 비싼 비용은 아니다.

국제지식 에디터 polee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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