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 정치적 발언 적절하지 못한 행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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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호 01면

대화가 시작되자 이 전 대법원장은 현안에 대해 소상히 의견을 밝혔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부러진 화살’과 ‘도가니’에 대한 생각부터 판사들의 잇따른 정치적 발언에 대한 소회, 그를 임명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재임 중 자신을 둘러싼 각종 ‘오해와 진실’에 대해 3시간 동안 의견을 피력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퇴임 후 첫 인터뷰

인터뷰는 그가 석좌교수로 있는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실에서 신동재 중앙SUNDAY 사회에디터가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장애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 ‘도가니’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이번엔 ‘부러진 화살’이 화제가 되고 있다. 혹시 영화는 봤나.
“영화는 안 봤다. 볼 생각이 없다. 사실을 일부만 추출하면 픽션이 된다. 요즘 말로 팩트(fact)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신문을 통해 영화 내용은 알고 있다.”

-‘이태원 살인사건’이나 ‘도가니’ ‘부러진 화살’ 같은 영화들이 요즘 현실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문 보도를 보니까 ‘부러진 화살’의 화면 하단에 ‘이는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이런 자막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일부 사실에 기초한 것’이라고 해야 맞다. 영화 내용이 마치 전부 사실인 양 표시한 것은 영화제작자로서는 좀 양심에 비춰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이런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법원에 대한 불신이 큰 탓이다. 해방 후 60년간 우리 법원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곳이다’라는 칭찬을 받았더라면 그런 영화가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재판을 받아 본 국민은 ‘판사들이 너무 권위적이다. 백성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노와 불신이 쌓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판사들이 법정에 와 있는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재판을 해야 한다.”

-석궁사건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판부가 혈액감정도 기각하고, 범행에 쓰인 부러진 화살이 없는데도 서둘러 재판을 밀어붙였다는데.
“영화에는 1심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고 2심의 특정 부분만 부각한 것으로 묘사돼 있다고 한다. 1심에서 각종 증거조사를 했으면 2심에서 그런 증거신청은 안 받아 줄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런 설명이 없으면 잘잘못을 가릴 수 없다.”

-석궁테러 직후인 2007년 1월, 이 대법원장께서 전국법원장회의를 소집해 ‘사법부에 대한 테러다. 엄중 대처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두고 재판을 하기도 전에 피고인이 유
죄라는 예단을 심어 주는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 당시엔 가해자 본인이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판사에 대한 테러가 생겼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또 대법원에서 회의를 했다고 해서 판사들이 재판하면서 증거조사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퇴임 후 일이지만 지난해 말 최은배 판사에 이어 김하늘·서기호·이정렬 판사에 이르기까지 현직 판사들이 법원 통신망이나 페이스북 등에 여러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 비판이 일었다. 판사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참 어려운 문제다. 공개적으로 전체 국민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예컨대 기자회견을 한다든지, 연설을 한다든지 해서 공적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판사로서 부적절하다. 그러나 친구를 만나 사적으로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법원 통신망을 사적인 공간이라고 볼 수 있나.
“판사들이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위 ‘공개될 수 있는’ 사적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자신들이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공개가 될 공간을 이용해 이런저런 발언을 하는 것은 적절치 못했다고 본다.”

-현직 판사들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대통령을 조롱하는 ‘가카새끼 짬뽕’ ‘가카의 빅엿’이란 저속한 표현을 썼는데.
“대단히 부적절한 표현이다. 법관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쓸 수 있는 말이 있고, 쓸 수 없는 말이 있다. 애들이나 쓰는 용어를 성인이 그렇게 쓰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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