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법 무시하는 판사, 추락하는 사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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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저는 이제 실정법을 어기고자 합니다.” 현직 판사가 작심하고 불법행위를 했다.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다. 이미 대통령을 비하하는 ‘가카새끼 짬뽕’이라는 글을 올려 ‘막말 판사’로 알려지더니 이번엔 자신의 필요에 따라 판사도 법을 어긴다는 사례를 남겼다. 이 부장판사가 어긴 법은 법원조직법 제65조 ‘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이다. 사연은 이렇다.

 그는 영화 ‘부러진 화살’의 소재인 ‘2007년 판사에 대한 석궁테러’의 발단이 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교수지위확인 등 항소심 주심판사였다. 당시 이 재판의 재판장이 김 교수로부터 석궁테러를 당했고, 이 영화가 개봉되면서 당시 주심이었던 이 부장판사에게 일각에서 비난을 퍼붓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의 글에 따르면 일부 법원관계자들도 메일을 보내 비아냥거린 모양이다. 이에 대해 이 부장판사는 “품위 없게도…저는 무척 쫄고 있습니다”라며 심리적 압박감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당시 재판부가 김 교수의 승소(勝訴)로 합의를 했었는데 소송수행상의 잘못이 있어 패소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자기 변명을 위해 법을 어기며 합의과정을 공개한 것이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원칙엔 이유가 있다. 판결이란 남의 인생 과정에 관여하는 일이다. 따라서 판사는 좌고우면(左顧右眄)도 할 것이고, 유죄와 무죄, 승소와 패소 사이를 무수히 오가며 고민할 것이다. 판결은 그렇게 내려진 정리된 결론이라 믿기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또 재판은 이해당사자들의 입장 차가 첨예해 어떤 결론이 나오든 당사자들은 억울하다. 그래서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서라도 판결은 엄정하게 해야 하며, 그 과정에 의혹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판사 스스로 판결에 확신하지 못하고, 비난이 쏟아지자 애초엔 결론이 상반됐었다고 공개하며 갈팡질팡하는 마당이니 어떻게 사법부의 판단을 믿으라는 말인가. 법을 어긴 이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는 법관징계법에 따라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날개 없이 추락하는 사법부의 권위와 판결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