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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 "작은아들, 나 때문에 화장실서 혼자…"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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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국회의원이 되려면 선거 유세 때 시장을 돌면서 할머니와 악수하고, 평소 안먹던 국밥을 한 그릇 먹으면 돼요”, “상대방을 이기려면 약점을 개처럼 물고 늘어지는 것도 방법이에요.” KBS ‘개그콘서트’ 코너 ‘사마귀유치원’에서 최효종이 국회의원을 풍자한 이 개그를 사람들은 웃고 넘겼다. 하지만 유독 한 사람은 태클을 걸었다. 강용석 의원이 “국회의원을 집단 모욕했다”며 고소를 한 것. 며칠 후 그는 일종의 정치적, 전략적인 퍼포먼스였다는 말로 고소를 취하했고, 네티즌들은 이 사건을 ‘올해 황당 뉴스 1위’로 선정했다.

한편에서는 박원순, 안철수 저격수로 지목되고, “또 당신이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소’를 일삼는 듯한 이 남자.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싸움 준비 안 된 파이터가 격투기에 출전한 것 같다는 얘기도 한다. 잘나가던 엘리트 출신이 희화화의 대상이 된 요즘, 본인 역시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며, 강용석 의원과 마주했다.

2011년 ‘황당 뉴스 1위’의 주인공이 됐다 2010년부터 나쁜 쪽으로 1위를 많이 해 본 터라 특별히 기분이 나쁘거나 그렇지는 않다. 어쨌든 1위가 됐다면 그분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서로에게 좋은 일 아닐까.

당신은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했지만, 네티즌들은 ‘꼼수’로 읽는다 번잡한 소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하지만 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라도 여론을 반전시켜야 될 필요가 있었다.

고소 사건 후 ‘개콘’에서 작심한 듯 당신을 풍자해 ‘강용석 특집’이라는 말도 돌았다. 당신은 퍼포먼스였지만. 개그맨들 입장에서는 자존심이나 명예를 심각하게 건드린거다. 즉,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얘기다 그분들 입장에서야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최효종씨뿐만 아니라 다른 개그맨분들에게도 죄송하다고 생각한다. 최효종씨에게는 따로 전화해서 내 의사도 전달했다.

고소 건을 빨리 취하했는데, 여론에 밀린 건가 아니면 사전에 타이밍을 미리 고려한건가 ‘개그콘서트’ 녹화가 매주 수요일인데, ‘강용석 특집’을 녹화한 다음 날, 아나운서분들이 나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청구 민사 소송이 기각됐다. 내 입장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데, 녹화까지 한 마당에 고소를 취하하면 다음 주 방영분이 우스워지잖나. 그래서 ‘강용석 특집’이 나간 후 취하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고소 사건의 득실을 따진다면 최효종씨가 인기 검색어 1위가 됐다. 나도 검색어순위에 올랐다. 그 정도면 윈윈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인기에 신경을 많이 쓰나 보다 정치인이든 연예인이든 그거 신경 안 쓴다면 거짓말이다. 대중 정치인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인지도가 있어야 된다. 좋은 인지도가 ‘인기’다. 하지만 나쁜 인지도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 국회의원 중에 괜찮은 분들이 참 많은데 다들 서울시장 선거에 나갈 엄두를 못 낸다. 국회의원 몇 번씩 하신 분들 대신 재선 나경원 의원이 출마한 이유가 뭐겠나. 욕도 먹고 했지만 어쨌든 서울 사람이면 90% 넘게 그사람을 안다. 그 인지도의 1/3만 호감도여도 괜찮은 거다. 나도 비난받을 걸 모르지 않았다. 욕먹을 각오하고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다.

그저 유명해지면 정치인에게는 일단 득이 된다는 얘기인가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대부분 나쁜 이미지다. 연예인을 봐도 그렇다. 입양이나 기부 같은 좋은 일도 기억하지만, 사고를 치거나 좋지 않은 일 위주로 기억하는 경우도 많다.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일단 인지도가 중요하고, 어찌 됐든 내 입장에서 마이너스는 아니었다고 본다. 지금 서울시민의 80% 정도는 내 이름을 알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대권 후보급은 아니어도 시장 후보급은 되지 않을까(웃음).

희화화의 대상이 됐는데, 그런 것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나 아나운서 발언 직후에는, 연예인들이 왜 댓글에 상처받아 자살하고 그러는지 이해가 됐다. 나를 동정하는 사람은 없고 전부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라는 글밖에 없었으니까. 그때 3~4개월 동안 집에서 유배당하듯 생활했는데, 그랬더니 오히려 맷집이 길러지더라. 마음이 단련된 거다. 그래서 지금은 괜찮다.

유명세도 중요하겠지만, 사람들이 당신에게 요구하는 건 진정성이다 대중이 전부 나를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번 고소 건은 대법원에서 알아주길 바라는 게 목적이었다. 앞으로는 도덕적인 비난을 받을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

“ 아나운서 관련 발언은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미안한 일”
그가 유명해진 건 지난 2010년 7월 ‘아나운서 발언’ 때문이다. 대학생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아나운서 지망생 등을 거론한 부적절한 발언을 했고, 한국아나운서연합회에서 그를 집단 모욕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현재 형사 재판에서 2심까지 유죄가 인정됐다. 하지만 아나운서들이 제기한 12억원 상당의 민사 소송은 기각된 상태다. 모욕죄 성립 여부는 아직 다툼의 소지가 남아있는 셈이다. 불씨가 잦아들 때인데, 최근 그는 판결문을 올리면서 소송에 참여한 아나운서들의 주소가 적힌 부분을 공개해 논란을 일으켰다.

판결문에 주소록은 왜 같이 올렸나. 프라이버시 침해 아닌가 그건 명백한 실수다. 파일이 아니고 종이 문서로 된 판결문이어서 의원실 직원에게 스캔해 블로그에 올리라고 말해 놓고 잠시 외출을 했는데 그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알면서 일부러 공개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판결문이 열몇 장이 넘는다. 직원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올려야 되는지 몰라서 한꺼번에 스캔해 올리다 생긴 일이다.

그때의 ‘아나운서 발언’에 대한 지금 생각은 어떤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리 얘기해도 부족하다. 굉장히 잘못된 발언이었고, 아나운서분들과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분들에게 상처를 드린 데 대해서 많이 반성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사과한다.

낯 뜨거운 농담을 자주 하는 편인가 평균보다 아니라고는 얘기 못하겠고, 평균보다 훨씬 더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학생들이 대상이었고, 그들의 멘토가 되어야 하는 자리였다는 것에 대해서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사석이지만 한편으로는 공적인 성격도 있는 자리였으니까 지도 교수와 친분이 있었고, 그 인연으로 몇 번 만나거나 이메일을 주고받은 학생도 있었다. 편하게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름 조언이라고 한 말이었는데, 그날 나를 처음 본 학생들이 느끼기에는 달랐던 것 같다.

여성에 관한 발언이어서 아내의 입장이 참 곤혹스러웠을 것 같다 집사람이야 일단 내 편이었다. 일이 커지지 않기만 바라고 걱정 많이 하면서 내게 부담을 안주려고 노력했다.

아버지로서의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었을 것 같은데, 가장의 명예 회복도 진행 중인가 큰애가 중학생인데 3주 가까이 인터넷을 아예 안 봤다. 작은아들은 혼자 화장실에서 울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아이들한테 미안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외부 여론이 안 좋으니까 가족들은 오히려 잘 뭉치게 되더라.

한동안 칩거했는데 무얼 하고 지냈나 아들이랑 야구하고 책 읽고 그러면서 보냈다. 남들이 보기엔 즐거운 한때라고 하겠지만 썩 즐겁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 내 싸움의 원칙은 우선 센 놈과 붙는다는 것”
그는 아나운서 사건 이후 한나라당에서 출당돼 현재 무소속 의원이다. 요즘 그에게 따라붙는 별명은 ‘스타 저격수’. 블로그를 통해 잘나가는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시장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펼치며 얻은 별명이다. 이를 두고 세 가지 해석이 나온다. 한나라당에 복귀하기 위해 공을 세우려고 총대를 멨다, 원래 시비 걸기를 좋아한다, 마지막은 인기를 염두에 둔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것.

요즘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시장을 계속 공격하는데, 꽤 센 상대들만 골랐다 박원순 시장 관련 의혹은 검찰에 정식으로 고소를 했으니까 내가 가타부타 발언하는 건 적절치 않다. 검찰에서 조사를 하겠지. 다만 안철수씨에 관한 주장은 이런 거다. 나는 그분이 나쁜 사람이나 범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너무 부풀려졌다는 거다. 물론 학자로서 인기 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정치판은 다르다. 그 사람은 선거로 검증된 적이 없다.

과대평가라고 치부하기에는 그쪽 편이 많은 것 같은데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본다.

누가, 왜 만들었다는 건가 우선 ‘우리나라에는 왜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인물이 없냐?’ 이런 목마름이 있었다. 하지만 1세대 벤처 신화들은 이미 일선에서 물러났고,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같은 분들도 훌륭하지만 게임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사회적 영웅으로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 지점에서 딱 적당한 게 안철수 교수다. 두 번째, 언론과 여론은 정치판에서 누가 독주하는 걸 싫어한다. 그러면 재미가 없다. 1노3김, 양김, 친이친박, 이런 식으로 적대적 공생 관계가 늘 있었다. 요즘 박근혜 의원에게 대적할 마땅한 후보가 없는 시점에서 급수가 맞는 사람이 나타난 거다. 이 바람이 오래가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공격 대상은 어떻게 고르나. 예비 리스트가 또 있나 싸움에는 원칙이 있다. 우선 센 놈하고 붙어야 된다. 그래야 이기면 폼이 나고 져도 본전이다. 약자와 싸우면 얻을 게 없다. 그렇다고 괴물하고 싸우면 안 된다. 그러면 나도 괴물이 되니까. 파워는 세지만 괴물은 아닌 사람, 그런 지점에서 그 사람들과 싸우고 있는 거다. 올봄쯤 되면 누가 이기든 내 리스트에서 그분들은 사라질 것 같다. 그러면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겠지

‘나는 꼼수다’ 멤버들은 어떤가 싸울 만하다. 발언의 영향력도 크고 굉장한 분들이니까. 사실 요즘은 정치인들보다 이런 분들이 더 세다. 공지영씨나 이외수씨 같은 작가들도 그렇고. 원래 권력자를 공격하는 사람은 뜨게 되어 있다.

한나라당에 복귀하려는 전략이라는 시선도 있다 그런 얘기 많이 들었다. ‘앞장서서 총대 메고 공을 세우면 잘못을 덮어줄 테니까, 그 타이밍에 다시 들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 미안하지만 그런 생각 전혀 없다. 한나라당이 성공의 보증수표도 아니다. 요즘 악재도 많고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당 간판을 내려야 될 시기가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든다.

그러면 이것도 뜨려고 그러는 건가 정치인이 하는 행동들이라는 게 결국은 대부분 다 뜨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나만 그러는 건 아닐 텐데.

‘노이즈 마케팅’이란 시선에 대해서는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써주면 내 입장에서는 성공이다. 사실 정치인들이 다 그렇다. 별의별 노이즈 마케팅을 한다. 국회의사당에 침낭 깔고 자면서 시위하고, 본청에서 최루탄도 터뜨리고, 그런 게 다 노이즈 마케팅 아니면 뭔가. 하지만 아무도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안 쓴다. 안 먹혔다는 얘기다. 내 행보가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얘기를 듣는다면 내 입장에서는 성공이다.

“ 콤플렉스 때문에 더 독하게 공부한 부분도 있다”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서울법대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 하버드 로스쿨 유학 당시 학생대표를 맡았다. 한편으로는 가정사에 얽힌 어려움과 그로 인한 콤플렉스도 있다. 그는 반지하 셋방에서 살던 가난한 집 막내아들이었다. 아버지는 10년 넘게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세상을 일찍 떠났다. 강용석은 대학 졸업 후 변호사로 활동했고, 한때 박원순 시장이 이끌던 참여연대에도 몸을 담았다.

그러다 지난 17대 총선 때 서른넷의 나이로 서울 마포구에서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낙선했고, 18대 총선에 다시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는 국회에 입성한 게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라고 했는데, 또 다른 영향력은 콤플렉스와 독기에서 비롯된 것도 같다고 말했다.

왜 국회의원이 됐나 굉장히 개인적인 이유다. 우선 법대 다니는 학생치고 국회의원 꿈 한 번 안 꿔본 사람 없을 거다. 기본적으로 그런 마음이 바탕에 있었다. 처음에는 졸업하고 판사가 되려고 했다. 성적이 좋았는데도 아버지가 목포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는 이유로 임용이 안 됐다. 연좌제로 엮이는 것 같아서 소송이라도 걸까 하다 포기했다. 그때부터 ‘이루지 못한 공직에 대한 꿈’ 같은 게 있었다. 임명직이 안 된다면 선출직에 도전하자 싶었고, 변호사 개업후부터 꾸준히 국회의원 될 준비를 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본인은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하셨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분이었다. 사실 아버지랑 얘기를 해볼 기회도 별로 없었다. 내가 스물아홉 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중에 10년 넘는 세월을 교도소에 계셨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는 내내 감옥에 있었고, 돌아가실 때도 건강이 악화돼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교도소 밖으로 나와 바로 눈을 감으셨다.

콤플렉스도 많았겠다 굉장히 많았다. 마포에 살았는데 화장실도 공동으로 쓰는 집이었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가 나랑 형 공부시킨다고 8학군으로 이사를 왔다. 지금 삼성동 코엑스 자리 근처에 반지하 연립주택들이 있었는데 거기 살았다. 공부는 제법 했지만, 우등생 애들 그룹에서 내가 제일 가난했다. 그러다 보니 남보다 더 독하게 공부한 부분도 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아이들한테 좀 엄한 기준을 적용한다는데 나도 그런 편이다. 아들이 셋인데, 그 애들 보면서 옛날 생각을 많이 한다. ‘내 아버지도 좋은 학벌에 국회의원이었으면 좀 더 편하게 학교 다녔을 텐데’ 하는 생각.

참여연대에서 입바른 소리를 했고, 지리산에 수해 났을 때는 가난한 사람들 집단 소송도 이끌었다. 그런 모습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최근 당신을 보면 ‘변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부모님 두 분 다 호남 출신이어서 특히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원래 성향이 그렇다. 진보냐 보수냐 하는 건 이념이 아니고 성향 문제다. 나는 보수적인 사람이다. 체제를 깨거나 부정할 생각이 없다. 참여연대에서 국회의원 낙선 운동 할 때도 그런 식으로 자기주장을 하느니 그냥 빠지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수구 세력이냐고 물으면 또 대답하기 좀 그렇고, 굳이 말하면 보수적인 야당이 좋은데, 처음 국회의원에 도전할 때는 한나라당이 야당이었다.

아나운서 발언 후 한나라당에서 쫓겨났는데 다음 총선에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하겠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국회에 남아야 되는 이유는 뭔가 나는 정치인을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이다. 남들이 정년퇴직하듯 예순 살까지는 할 거다.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을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걸 주저한다. 그러니 총선에 꼭 나가야 한다. 다들 유권자나 국민을 얘기하지만, 개인적인 이유도 중요하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강의와 책이 유명세를 탔다. 당신에게 정의란 뭔가 특권 의식을 깨는 거다. 내가 공격하는 분들에겐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특권 의식이 있다. 겉으로는 선해 보이지만,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인식. 그걸 깨고 싶다.

솔직히 말해 보자. 기자는 지금의 강용석은 별로 멋이 없다고 본다. 그래서 묻는다. 본인이 가장 멋있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난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없다. 대학교 등록금 마련할 길이 없어서 고3 때 ‘장학퀴즈’에 나가 우승하고 그 상금으로 입학금을 냈다. 그래서인지 늘 지금이 가장 좋은 순간이고, 항상 무한 긍정하면서 사는 편이다.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이뤄진다고 믿는다. 아나운서 발언 사건 때도 남들은 시련이라고 했지만 사실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큰 시련이 아니었다. ‘사과할 부분들은 분명히 하되, 반전할 기회가 올 거다. 꾹 참자’ 이런 기분으로 지냈다.

‘비호감’으로 찍혔을 수도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 지금 나한테 더 낙인찍힐 비호감이 있나. 할 말은 하는 사람, 욕먹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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