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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같은 삶, 불꽃 같은 탱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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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호 16면

돌고 도는 회전무대, 어디에도 닿지 않는 계단, 허공에 걸쳐진 발코니. 비천한 출신으로 퍼스트레이디에 올라 부통령까지 노렸던 집념의 삶과 33세의 젊음에 그 모두를 등져야 했던 허무한 죽음. 어디 에비타뿐일까. 욕망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희로애락을 돌고 돌면서도 종착역을 가늠하지 못하는 것. 이름 없는 우리 모두의 인생을 상징하는 무대가 한 줄기 조명 아래 외로운 트럼펫 연주와 함께 열린다.

뮤지컬 에비타, 1월 29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

1978년 초연 이래 30년 넘게 사랑받아온 뮤지컬의 고전 ‘에비타’. 80년대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처음으로 각국 언어로 공연되며 뮤지컬 글로벌 시대를 열어젖힌 작품이다. 뮤지컬 빅뱅을 넘어 또 하나의 한류 콘텐트로 도약을 꿈꾸고 있는 우리 공연계가 새삼 짚어볼 만한 무대다. 리키 마틴 주연으로 오는 3월 브로드웨이에서도 새롭게 태어날 이 고전이 세월의 흐름에도 퇴색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뮤지컬계의 살아 있는 전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불후의 명곡들은 기본이다. 너무도 익숙한 음악을 어떻게 소화해 내는가가 관건인데, 힘을 뺀 채 자유자재로 노래를 쥐락펴락하며 무대를 휘젓는 정선아는 독보적 존재감을 피력했다. 그렇다면 스타가 발산하는 아우라에 관객이 초토화되는 것이 뮤지컬이 주는 감동의 본질일까?

상반된 역사적 평가를 한 몸에 받아온 국모급 여성을 원톱으로 내세운 연대기적 서사라는 점에서 우리 뮤지컬 ‘명성황후’는 좋은 비교 대상이다. ‘명성황후’는 민족적 영웅주의를 앞세워 스타가 주는 일방적 감동을 유도했지만 민족의 모성이라는 스타성은 민족의 경계를 넘기 힘들었다. 반면에 ‘성녀 vs 악녀’를 판단하는 대중의 시선에 주목한 ‘에비타’. 엇갈린 평가의 대립구도에 능동적으로 가치를 개입하는 관객은 애초부터 국적과 무관하다. 군중에 꿈과 희망을 주겠다며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환상적으로 부르는 에바와 “못 배워처먹은 이 잡년” 등 리얼한 가사를 시침 떼고 4부 합창하는 앙상블의 부조화. 스타와 익명성의 팽팽한 긴장관계가 무대를 지배한다.

익명성을 대표하는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또 다른 영웅 체 게바라다. 비난조의 해설로 극을 이끄는 ‘체’는 혁명가 이전 고뇌하는 청춘의 모습이다. 아르헨티나인은 ‘Che’를 영어의 ‘Hey’처럼 누군가를 이름 대신 부를 때 사용한다는 점이 ‘체’의 익명성을 뒷받침한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자 가운데 살았던 체와 가난한 사생아로 태어나 인생역전 끝에 최고의 셀레브리티가 된 에바. 그들이 호흡을 맞춘 공격적 탱고 댄스는 그 대립을 인상적으로 함축한 명장면이다.

장엄한 미사곡에 군중의 무용적 조형미가 더해진 수미일관의 장례 신은 대립을 통일로 이끄는 효과적 연출이다. 강렬한 조명을 뒤로하고 실루엣으로 등장하는 에비타의 영혼은 종교적 환상과도 닮은 숭고미를 발산하지만, 영웅의 신격화가 아닌 인간적 뒷모습을 조명한 엔딩에 주목해야 한다. 함께 먼 여행을 떠나는 에바와 체. 스타와 군중은 결국 서로를 보듬어야 할 운명인 것을.

스토리보다 캐릭터 부각에 주목한 탓에 극적 재미는 덜하다. ‘악녀 vs 성녀’라는 테마가 타자의 시선을 넘어 내면의 이중성, 인간적 딜레마의 문제로 비주얼하게 부각되는 연출이라면 더 흥미로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 여인의 굴곡진 삶을 통해 비춰진 모순에 찬 인간사, 그 어쩔 수 없는 실존의 자각이 영원히 잊히지 않을 명곡과 함께 뇌리에 새겨지는 것. 이 고전 뮤지컬이 30년 세월에도 퇴색함 없이 지구 반대편까지 울림을 주는 명작의 이유일 것이다.



체 게바라(1928~67)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의학을 전공한 엘리트였지만 민중의 비참한 현실을 목도하고 혁명가로 전향한다. 1959년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시키고 콩고,볼리비아 등지에서 계속 혁명을 주도하다 전장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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