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에 피 … 와이셔츠에 혈흔 없어도 화살 맞은 사실 부인할 수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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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호 04면

김명호(54) 전 성균관대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95년 대입 본고사 수학문제가 잘못 출제됐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는 학교로부터 3개월 징계처분을 받았고, 이듬해 2월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있던 그는 2005년 사립학교법이 개정돼 재임용 소송을 낼 수 있게 되자 귀국해 법원에 교수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판결문으로 본 석궁 테러

판결문에 나타난 사건의 구성은 이렇다. 평소 재판진행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 김 전 교수는 당시 민사소송 항소심 재판장인 박홍우(60· 현 의정부지법원장) 부장판사의 서울 송파구 집을 7차례나 방문해 동선을 살폈다. 2007년 1월 15일 오후 6시30분 그는 석궁에 화살 1발을 장전하고 집 앞에서 부장판사의 귀가를 기다렸다. 박 부장판사가 도착하자 “항소기각 이유가 뭐냐”며 석궁을 쐈다. 이후 박 부장판사의 멱살을 잡아 넘어뜨리고 몸싸움을 벌였다. 그는 현장에서 체포됐고, 경찰은 석궁과 화살 9개, 석궁 가방 속에 있던 회칼 1자루, 양복 상의, 와이셔츠, 조끼, 내복 상의, 속옷 상의 각 1개를 압수했다. 박 부장판사는 조사 결과 배꼽 왼쪽 부분에 길이 2㎝의 상처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사건 다음날인 16일 김 전 교수를 살인미수 혐의로 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17일 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서울동부지검은 그해 2월 8일 김 전 교수를 살인미수가 아닌 ‘흉기 상해’ 혐의로 기소했다. 김 전 교수는 재판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화살이 나갔다”고 주장했지만 1심에서 검찰은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는 4년형을 선고했다. 재판 결과에 불복해 그는 항소와 상고를 이어갔지만 기각됐고 결국 2008년 6월 징역 4년형의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

석궁 사건의 쟁점은 범행의 고의성 여부, 부러진 화살의 행방, 속옷과 조끼엔 있는데 와이셔츠에만 없는 혈흔, 피해자인 박 부장판사의 엇갈린 진술의 신빙성 등이었다. 대법원은 범행의 고의성 여부에 대해 “김 전 교수가 일주일에 1회 정도 석궁 연습을 했고, 7회에 걸쳐 피해자 거주지를 찾아가 귀가시각을 확인했다”며 “겁을 주려고 했다면 치밀한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 전 교수 측은 범행에 쓰인 물증인 ‘부러진 화살’이 없어졌다는 점을 들어 증거조작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범행현장에서 증거물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이를 증거조작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와이셔츠에만 없는 혈흔에 대해서도 김 전 교수 측은 증거조작을 내세웠다. 그러나 대법원은 “와이셔츠 혈흔이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속옷과 내의에서 다량의 출혈 흔적이 확인된다는 사실의 증명력이 훨씬 우월하다”고 봤다.

피해자인 박 부장판사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서도 양측 주장이 엇갈렸다. 김 전 교수 측은 “25년 경력의 법관이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범행이 어둠 속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났고 충격을 받은 사정을 고려하면 진술이 다소 일관되지 못하다고 하여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에 대해 법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미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건에 대해 재판을 다시 하자는 취지로 비쳐질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로 논란이 종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영화로 거론되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한편 사건의 피해자였던 박홍우 법원장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하지만 이상엽 의정부지법 공보판사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짧게 밝혔다. 그는 “영화는 영화다. 영화 내용이 사실이라는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영화 때문에 사법부가 신뢰를 얻어가는 중에 누를 끼칠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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