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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 선거 출마자 3인 모두 장징궈의 그림자 속에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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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제13대 총통선거를 하루 앞둔 13일은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이 서거한 지 24주년 되는 날이었다. 그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부친인 장제스(蔣介石)의 권력을 이어받아 10여 년 동안 권좌에 앉아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끈 주역이다.

집권 당시 그에겐 나라 안팎의 비판적 시선이 쏠렸다. 부자(父子) 세습 통치가 대만의 민주화를 막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만인에게 ‘역대 총통 중 누가 가장 훌륭한가’라고 물으면 장징궈는 매번 첫손가락에 꼽힌다.

그에게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셋 있었다. 총통 자리를 물려 받은 리덩후이(李登輝·89) 전 총통, 장징궈 집권 시절 당·정의 요직을 맡았던 쑹추위(宋楚瑜·70), 영어 통역전담 비서로 늘 곁에 있었던 마잉주(馬英九·61) 현 총통이다.

민진당 후보인 차이잉원 대표가 13일 오후 타이베이에서 대만 독립 노선을 지지하는 리덩후이 전총통과 함께 마지막 유세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리덩후이는 12년간 총통 자리에 있다가 물러난 원로 정치인이고, 쑹추위와 마잉주는 각각 자신이 이끄는 친민당과 국민당의 13대 총통선거 후보자 신분이다. 구름이 끼고 가느다란 빗줄기가 보이던 13일 아침에 세 사람이 보인 행적은 달랐다. 국민당의 정통 계승자를 자처하는 마잉주 후보는 이날 국제공항이 있는 타오위안(桃園)의 장징궈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대만 TV 방송들의 카메라에 잡힌 마잉주의 표정은 비장했다. 눈가는 금세 눈물이 흘러내릴 듯 붉게 물들었다. 쑹추위는 자신의 지지세를 확보하기 위해 대만 중부도시 타이중(臺中)에 머물고 있었다. 마 총통의 묘역 참배 소식을 전해 들은 뒤 그가 보인 반응은 “마잉주가 장징궈 총통이 남긴 민주와 번영의 뜻을 잇지 못했다”는 비판이었다.

선거 유세 과정에서 89세의 노인 리덩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언론과의 접촉도 끊었다. 대신 그는 저녁 9시쯤 대만 북부 반차오(板橋)에 나타났다. 민진당 후보인 차이잉원(蔡英文·55)의 대선 유세 막바지 현장이었다. 그는 차이 후보의 어깨를 감싸 안은 뒤 “이제 대만은 당신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장징궈가 역대 총통 중 가장 높은 인기를 얻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대륙에서 건너와 대만을 통치한 외부인이었다. 전체 인구의 80%가 넘는 ‘대만 본성인(本省人)’을 다스린 ‘대륙계 권력자’였다. 그러나 그는 매우 경이롭게도 대륙계 통치자의 권위를 스스로 벗어던졌다. 그리고 그가 추진한 작업은 대만은 대만인이 다스려야 한다는 ‘권력의 현지화’였다.

장징궈는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과 대학 동창이다. 소련 공산당이 중국 공산혁명의 엘리트를 키우기 위해 모스크바에 설립한 중산(中山)대학에서 함께 공부한 사이다. 생전의 장징궈는 “키 작은 덩샤오핑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그가 내건 개혁·개방은 힘을 얻는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키우면서 경제를 발전시켜 그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누적된 피로에다 고혈압·당뇨 등 합병증을 얻어 1988년 1월 타계했다. 그 뒤를 이은 사람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부총통 리덩후이였다. 그는 태생이 대만인이었고, 학자 출신으로 거의 행정직에서 일한 경험밖에 없었다. 쑹추위는 그런 리덩후이의 취약한 권력 기반을 뒷받침해준 국민당 내의 젊은 실력자였다. 마잉주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미래의 기대주였다. 쑹과 마는 모두 장징궈처럼 대륙으로부터 건너온 외부인이었다.

리덩후이 후임으로 대만을 이끈 사람은 전통 야당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60·17년형을 받고 수감 중). 국민당의 51년 통치의 막을 내린 주역이었다. 배후에는 리덩후이가 있었다. 그는 사실상 ‘대만인에 의한 대만 통치’라는 이념의 철저한 신봉자였으며, 민진당은 그런 리덩후이의 커다란 지지를 업고 마침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그리고 리덩후이는 국민당을 떠났다.

장 총통 철학, 대만의 민주화·번영·현지화
마잉주는 대중적 이미지가 좋고, 풍부한 행정 경험이 강점이다. 쑹추위는 국민당의 전통적인 야합정치에 반기를 들고 친민당을 창당했다. 그의 정치적 스승인 장징궈의 ‘민주의 대만, 번영의 대만’을 꿈꾸는 원로 정치인이다.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는 ‘새 대만인’을 내걸고 천수이볜 시대의 부정부패 그림자를 벗어났다. 차이는 국민당을 떠난 리덩후이가 추진해온 ‘대만 현지화’의 이념적 계승자다.

세 사람이 치열하게 붙은 13대 총통선거는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 곳에서 만난다. 바로 장징궈다. 그는 대만의 민주화와 번영, 철저한 ‘대만 현지화’를 추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선거는 국민당·민진당·친민당 후보가 24년 전 타계한 장징궈 총통의 철학을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서 다시 연역(演繹)해 대만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겉으로 보면 이번 대만 총통선거의 가장 큰 이슈는 ‘양안(兩岸·대만과 중국)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문제다. 마 후보는 지난 4년간 중국과의 경제·인적 교류를 눈에 띄게 활성화했다. 중·대만 사이엔 역사상 최고의 화해협력 분위기가 이어졌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대만의 경제구조로 볼 때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민진당의 시각은 다르다. 대중 의존도를 무제한으로 높이는 게 대만의 미래에 바람직하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여성 후보인 차이잉원은 ‘대만의 문제는 대만이 결정한다’는 대만 자주(自主) 의식을 제창했다. 92년 대만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에 맺었다는 안정적인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 이른바 ‘92 컨센서스’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취지의 ‘대만 컨센서스’를 주장하며 선풍을 일으켰다.

다시 첨예하게 등장한 대만인 정체성
대만 총통선거에선 늘 이념 대결이 펼쳐졌다. 2000년 민진당이 처음 집권하던 대선에서도, 국민당이 정권을 되찾은 2008년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핵심은 중국과의 통일이냐, 아니면 독립이냐의 이른바 ‘통·독(統·獨) 논쟁’이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달랐다. 그런 차원을 넘어서 ‘대만에 중국은 무엇이냐’가 큰 주제로 떠올랐다. 통일과 독립이 정치체제의 틀을 묻는 성질이었다면, 이번 선거에서 제기된 ‘대만 자주’는 대만의 정체성 자체가 중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어서다.

대만 정체성에 관한 문제는 장징궈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은 리덩후이, 그 뒤를 다시 이어간 천수이볜의 8년 집권 시기에도 꾸준히 제기됐다. 차이잉원이 내건 ‘대만 컨센서스’에는 ‘중국인과는 다른 대만인’의 의식이 강하게 숨을 쉬고 있다.

차이잉원은 대선 직전 낸 자서전에서 스스로를 “아버지는 학카(客家·중국 본토에서 여러 곳을 전전하며 만들어진 혈통), 어머니는 허뤄(河洛·중국 푸젠성 동남부) 사람, 할머니는 대만 원주민”이라고 밝히며 대만인의 정체성이 중국과는 달리 형성된 군체(群體)임을 설명하고 있다. 대만 학계에서 대만인의 정체성을 ‘중국과는 다른 이종(異種) 결합’이라고 설명하는 이론의 정치적 접근이다.

차이잉원은 유세 때마다 “우리 대만인은 우리 스스로의 안정과 번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 점에선 국민당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중국과는 통일을 하지 않는다는 ‘불통(不統)’의 입장을 역설하고 나섰다. 친민당의 쑹추위 후보 또한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성숙시킨 대만은 중국과 다르다”는 입장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통선거에 나선 세 후보의 철학은 같다. 장징궈가 내세운 ‘자유민주, 번영, 대만 발전’의 지향점 중 각자 하나씩을 더 연역해 확대 발전시킨 모양새다. 세 후보의 또 다른 공통점은 자유민주 체제를 토대로 경제적 번영을 일군 대만의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키자는 점이다.

대만 대선은 막을 내렸다. 대선 막판까지 힘을 겨룬 세 사람은 차이점과 함께 공통점도 형성했다. ‘대만의 가치’에 관한 인식이다. 대만은 외부 관찰자들의 생각처럼 중국이란 요소·변수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다. ‘대만은 대만의 길을 간다’는 지향이 분명하다. 주요 선거를 통해 점차 쌓이는 정권교체의 경험, 이념적 갈등을 푸는 정치적 노하우가 쌓이면서 대만은 중국과 분명히 다른 길을 갈 전망이다.

모든 국력을 집중해 G2(미국·중국)로 부상하는 중국의 현대사에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이 버티고 있듯이, 오늘의 대만에는 자유와 민주, 번영과 발전을 내세웠던 장징궈의 존재감이 우뚝 자리 잡고 있다.

타이베이=유광종 선임기자 kj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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