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학생인권조례 균형감 있게 보완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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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대영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이 지난달 서울시의회에서 처리된 학생인권조례를 시의회에 다시 보낸다고 한다.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고 보호한다는 취지의 인권조례는 오는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적용될 예정이었으나 이번 결정으로 시의회에서 재의(再議)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진보성향의 시민단체들이 발의하고 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통과시킨 조례인 만큼 재의 요구는 극심한 반발을 일으킬 전망이다.

 학생들의 인권은 소중하며 보호받아야 할 가치라는 견해엔 좌나 우나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는 보완돼야 할 부분이 있다. 따라서 시교육청의 재의 요구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우선 조례 자체의 문제점이다. 조례의 50개 조항 전체를 보면 학생의 권리는 비대한데 책임과 의무는 빈약하기 그지 없다. 휴식할 권리, 두발 등 용모에 대해 규제받지 않을 권리, 휴대전화 소지의 권리, 동의 없이 소지품 검사나 압수를 당하지 않을 권리, 일기장 등을 열람당하지 않을 권리, 학교 안팎에서 집회를 열 자유 등 숱하게 열거돼 있다. 물론 휴대전화 소지나 복장 착용, 학교 안 집회 개최는 학교 교칙으로 일정 부분 제한할 수 있다. 그런데 조례의 다른 쪽엔 ‘학교 규칙은 학생 인권의 본질적 내용을 제한할 수 없다’는 조항(3조3항)도 있으니 규율이 작동하기란 쉽지 않다.

 이에 비해 ‘(학생은) 교사 및 다른 학생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4조5항), ‘학교 규범을 존중해야 한다’(4조6항)는 조항만이 학생의 책무를 다루고 있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 어떤 규제가 있는지 규정은 아예 없다.

 학생 한 사람의 권리 신장이 타인의 권리 침해로 이어진다면 일정한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는 견해엔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타인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 대책이 반드시 갖춰져 있는 게 민주 사회의 기본 질서다. 그래야 각 개인의 권리신장이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조화될 수 있다.

 이로 볼 때 학생인권조례는 균형감을 잃었으며, 자기 권리만 주장하는 학생을 길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불완전하다. 권리를 주장하되 권리에 따르는 책임도 잊지 않는 균형 잡힌 사람을 길러내는 데도 미흡하다.

 또한 정작 학생들의 인권을 지켜줘야 할 학교가 처해 있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에서 보듯 학교 폭력은 위험 수위를 넘었다. 학교는 이미 학생들을 통솔할 수 있는 한 조각의 권위마저 상실했으며, 학생들의 폭력을 예방하기는커녕 피해 학생의 신고조차 받지 못하는 곳이 됐다. 학교 안에서 휴대전화 소지와 사용이 사실상 무제한 허용되고, 흉기를 들고 다녀도 교사가 소지품 검사를 함부로 할 수 없으며, 자살 방지를 위해 일기장 검사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폭력으로부터 안전해야 할 학생들의 인권은 누가 지키라는 것인가.

 이미 교권이 실추된 교실에서 인권조례에 따라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시의회는 학생들의 책무성을 보완하고 폭력 안전 대책을 포함하며, 교사의 권위를 되살릴 수 있는 조항을 인권조례에 신설해 재의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