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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생활지도 베테랑 노정근 교사가 말하는 학교폭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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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우들 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학생 권모군의 같은 반 친구와 담임선생님이 지난해 12월 29일 겨울방학 종업식을 마친 후 대구 팔공산 도림사 내 추모관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이 녀석, 수업시간에 왜 졸아!” 선생님의 호통이 떨어진다. 화들짝 놀란 학생이 “죄송합니다”고 조아리는 모습을 떠올린다면, 이미 십수년 전의 교실 풍경을 착각하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일어나라”고 깨우면 외려 날 선 눈으로 “왜요?”라고 대들 듯 반문하는 것이 다반사다.1986년 교단에 발을 내디딘 지 올해로 27년째, 그중 12년째 학생 생활지도를 맡고 있는 노정근(54·김포 용호교·작은 사진) 교사가 전하는 요즘 학교는 황량하다 못해 살벌하다. 얼마 전 대구의 한 중학생이 급우들의 집요한 협박과 폭행으로 자살하면서 우리 학원 폭력의 실상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성인 조폭 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잔인함과 대담함, 이들의 위세에 피해 학생은 물론 동료들과 선생님도 입을 닫는다는 사실에 국민은 충격을 받고 있다. 노 교사를 통해 우리 학원의 요즘 실상과 문제점을 들어봤다. 5일 인터뷰에서 노 교사는 “학원폭력은 어른들의 병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무너진 교권, 지친 선생님, 밥벌이에 쫓기는 부모, 이 삼박자가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학원폭력이 심각하다. 오랫동안 학생 생활지도를 해오고 있는 교사 입장에서 실상을 말해달라.
“학교폭력은 일회성이냐 지속적인 것이냐, 개별적인 것이냐 집단적인 것이냐로 나눠 볼 수 있다. 일회성에 그치는 단순 폭력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부모들의 세대에도 ‘일진’이라고 말을 안 붙였을 뿐이지 싸움 잘하는 학생들의 폭행은 가끔 있어 오지 않았나. 어른들은 그 때문에 “우리 때도 그랬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학교폭력은 양상이 다르다. 지속적이면서 집단적으로 이뤄진다.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도 그런 집요한 폭력에 굴복해 발생했다. 왕따도 그렇다.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엔 이유가 없다. 공부를 잘해도 대상이 되고, 못해도 왕따가 된다.”

-학생끼리는 어느 학생이 괴롭힘을 당하는지 알아도, 선생님과 부모는 모르는 일이 많다는데.
“이번에도 대구 자살 사건이 터지니까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폭력 설문조사를 매년 3월과 9월에 하겠다고 발표했다. 학교가 아이들의 폭력문제를 파악하겠다고 하는 설문인 셈이다. 그런데 이게 코미디다. 학생들에게 폭력·금품갈취, 이런 걸 적어내도록 하는데 보복이 두려워 잘 응하지 않는다. 정작 누가 폭행을 하는지, 당하는지 알 수가 없는데, 누구를 불러서 조사를 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폭력 설문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탁상행정이고 웃기는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학교폭력 문제를 알 수 있나.
“현재로서는 없다. 지난해 1학기 초에 우리 학교에서도 폭력사건이 하나 드러났다. ‘남학생 2명이 한 여학생에게 불려가 맞았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학생들에게서 들었다. 그래서 맞은 학생을 불러다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처럼 학생들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선생님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여학생 1명에게 남학생 2명이 맞았다는 말인가.
“1학년 남학생 2명이 버스를 타고 가다 여학생 험담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 이야기가 가해학생 귀에 들어갔고, 이 여학생이 알고 지내던 2, 3학년 남학생들을 앞세워 피해학생을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불러 뺨을 때린 것이다. 학교에서 폭력대책위원회를 열고 가해학생 부모를 불렀다. 그런데 여학생은 부모가 이혼을 했고, 가장인 엄마는 돈벌이에 내몰려 아이에게 관심을 가질 형편이 못 됐다. 피해학생 부모가 금전 보상과 가해학생의 전학을 요구했는데 현행 제도는 가해학생 부모가 전학을 거부하면 강제로 보낼 방법이 없다. 결국 전학을 조건으로 형사고소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해결됐다.”

-최근엔 가해학생들을 강제전학 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피해학생의 보호가 물론 중요하지만, 학교 입장에선 가해학생도 잘 선도해 사회로 내보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실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은 결손가정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우리 학교에 1900여 명의 학생이 있다. 한 아이를 전학 보낸다고 해서 학교폭력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해학생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속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라면 퇴학시키는 게 맞다. 하지만 퇴학처럼 격리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이 필요하다. 경기도만 해도 66개의 대안교육 단기위탁기관이 있다. 징계는 사회봉사-특별교육 이수-등교정지-전학-퇴학 순으로 이뤄진다. 적어도 사회봉사를 부과하는 아이들은 심리상담-언어교육-봉사교육 등을 받은 뒤 학교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해학생 부모도 같이 교육받는 방법도 추천할 만하다.”

-학교폭력에 대한 학교와 선생님의 미온적인 태도도 문제 아닌가.
“학교가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는 드물다. 학교 이미지 때문이다. 대개 피해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때 피해학생들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외부에 드러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사실 선생님이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을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실제로 열정을 갖고 아이들과 대화하는 선생님들은 많지 않다.”

-왜 그런가.
“입시위주 교육으로 무너진 교권이 선생님들의 의욕을 깎아내렸다. 학생인권조례도 선생님들의 발목을 붙든다(경기도는 2010년 3월부터 소지품 검사, 체벌금지 등을 골자로 한 학생인권조례를 시행 중이다). 학교에선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 때문에 선생님들과 전쟁이 벌어진다.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없도록 해서 담배나 흉기 소지 여부를 알 수도 없다. 선생님들의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거칠어진 요즘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지도하기가 매우 힘들게 돼 있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뭔가 조사를 해봤더니 1위가 ‘×팔’, 2위가 ‘×나’였다. 기본 언어교육과 인성교육이 안 돼 있는 아이들에게 책임보다 권리를 앞세우도록 하면 안 된다. 소지품 검사를 받지 않을 권리에 앞서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고, 친구를 때려서는 안 된다는 인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학교폭력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선생님이 해야 한다. 사춘기를 겪으며 부모의 말을 안 듣는 아이들도 학교에 오면 선생님의 말은 귀담아듣는다. 특히 담임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하루에 3~4시간 수업을 하고, 잡무를 하다 보면 정작 아이들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은 조회시간과 종례시간밖에 없다. 그래서 담임은 교사업계의 3D로 불린다. 담임 기피현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담임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학생들과 허물없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사-학부모-학생이 소통하면서 교육의 본질인 인성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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