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예산 감축에 밀려 … 미 ‘세계의 경찰’ 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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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미국의 새 국방전략을 발표하는 펜타곤(국방부) 브리핑룸에는 군 통수권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가 모두 출동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곳에서 브리핑을 한 건 취임 후 처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유지: 21세기 국방 우선순위’라는 제목의 새 국방전략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면서 “지금은 전환의 시점”이라고 말했다. 표현은 거창했지만, 지난해 여름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의회와 합의한 ‘10년 내 국방비 4870억 달러(약 565조원) 감축’에 맞춘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새 국방전략의 골자는 지상군 감축, 아시아·태평양 지역 중시, 사이버·드론(Drone·무인정찰기) 등 미래전과 비정규전 강화였다.

미 국방부는 ‘2개의 전쟁’ 을 폐기하고, 안보 축을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기는 새 국방전략을 발표했다. 미항공모함 존 C 스텐니스가 지난해 11월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서 작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이미지 크게보기>

 오바마는 구체적인 감축 방안을 1~2주 내에 발표될 2013 회계연도 예산안에 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 등 미 언론들은 오바마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육군과 해병대 규모를 10~15% 축소하는 방안이 포함된다고 보도했다. 현재 76만6000명(육군 56만5000명, 해병대 20만1000명) 중 향후 10년간 7만6000~11만4000명이 줄어든다고 했다. 대당 가격이 1억 달러(약 1161억원)인 신형 F-35 스텔기 전투기의 구매도 연기될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특히 지상군 축소는 ‘두 개의 전쟁 전략’ 포기로 이어졌다. 대신 ‘1개의 전구(戰區·theater)에 집중하되 나머지 지역에선 도발을 억제하는 원 플러스(1+) 전략’으로 전환된다. 군사력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재정적자에 따른 국방비 감축으로 미국의 ‘세계의 경찰’ 역할도 막을 내리게 됐다.▶<본지 1월5일자 1면>

 새 국방전략이 아시아·태평양 안보를 강조한 것은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아태 지역에서 미군의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며 “예산 감축은 이 중요한(critical) 지역엔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패네타 장관은 보충 브리핑 때 아태 지역으로 국방전략의 중심을 옮기는 이유로 “중국의 부상(rising)”과 “이란·북한 등의 위협”을 꼭 짚어 말했다.

 국방예산 감축에도 불구하고 사이버전 전력과 드론으로 대표되는 신개념 군사력은 증강될 전망이다. 지난해 미국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드론을 활용해 알카에다 지도자들을 제거했다. 지상군은 보다 경량화하고, 기동성이 뛰어난 부대로 바뀌게 된다. 오바마는 이를 “날렵하고 유연한 군대”라고 표현했다.

 새 국방전략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브리핑 중에 오바마 대통령과 패네타 장관은 “동맹국·파트너와의 협력 강화”를 수차례 강조했다. 미국은 병력을 감축하는 유럽 지역에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이 그 공백을 메워주길 기대한다. 또 아태 지역에선 한국·일본 등 동맹국이 부담을 나눠 안기를 바라는 눈치다. 5일 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새 국방전략은 국방부 혼자만 할 게 아니다. 외교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셸 플로노이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아태 지역 동맹국들과 탄도미사일 방어를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새 국방전략 보고서 요지

■ 아태로의 안보 축 이동=미군은 전 세계 안보에 계속해서 기여하면서, 아시아·태평양을 중심으로 재조정될 것이다. 미국은 인도와의 장기적 전략 파트너십에 투자할 것이다.

■ 한반도=미국은 동맹과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방어하는 방식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할 것이다.

■ 중국=중국의 부상은 여러 방식으로 미국의 안보와 경제에 영향을 줄 잠재력을 가질 것이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전략적 의도에 대한 투명성을 동반해야 한다. 미국은 이 지역에 대해 접근과 동맹상의 의무에 따른 자유로운 작전능력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를 계속 해나갈 것이다.

■ 중동=미국의 정책은 이란의 핵무기 능력을 막기 위해 걸프해의 안보를 강조할 것이다.

■ 유럽=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병력감축 은 유럽에 대한 미국의 투자를 재조정할 전략적 기회를 창출했다. 이런 전략적 환경 진전에 맞춰 유럽에서의 대비 태세도 변해야 한다.

■ 2개의 전쟁 포기(1곳은 전쟁, 1곳은 작전만)=세계 여러 지역에서 중요한 이익을 가진 국가로서, 우리의 군은 한 지역에서 대규모 작전을 벌이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적의 침략을 억지하고 패퇴시킬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한 지역에서 대규모 작전을 벌이는 중이라도 다른 지역에서 침략자의 의도를 무력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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