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2년 만에 ‘2개의 전쟁’ 전략 폐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3일 오전(현지시간) 하와이 휴가를 마치고 백악관으로 복귀했다. 그는 이날 오후 유일하게 리언 패네타(Leon Panetta) 국방장관을 집무실로 불렀다. 오바마는 패네타, 조 바이든(Joe Biden) 부통령과 함께 가혹한 긴축예산 시대를 맞은 미국의 새 군사전략을 최종 점검했다. 오후 늦게 미 국방부는 패네타 장관과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의 5일 기자회견 일정을 발표했다. 제임스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이래 여섯 번이나 군 수뇌부를 만났으며, 특히 12월엔 임기 중 최초로 전 세계에 파견된 전투사령관 전원을 불러 의견을 나눴다”며 “향후 10년 동안 4890억 달러(약 560조원)의 국방예산 감축에 맞춘 새 전략이 발표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의 새 군사 전략은 ▶유럽 지역 군 감축 ▶아시아로의 안보 축 이동 ▶해·공군 통합전력 강화 ▶ 과감한 인건비 및 퇴직수당 감축 등을 포함할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 타임스(NYT) 등 주요 미 언론은 이와 관련해 “오바마 정부가 미국이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두 개의 전쟁’ 전략을 사실상 포기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 세계 두 곳에서 재래식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지상군을 파견해 동시에 승리한다는 ‘2개 전장(戰場) 동시 승리 전략’이 국방예산 삭감으로 22년 만에 기로에 섰다는 것이다. 미 의회에선 5000억 달러의 국방 예산을 추가로 삭감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중동과 동북아에서의 동시 전쟁을 염두에 둔 이 전략은 냉전 후 미 국방정책의 근간이었다. 군 전문가들은 미국이 ‘두 개의 전쟁’ 대신 한 개의 지상군 전쟁 수행 능력만 갖춰 놓고, 다른 지역에선 또 다른 적국의 분쟁 시도를 막는 ‘방해자’(spoiler) 역할에 만족하는 ‘원 플러스(1+) 전략’으로 수정했다고 분석했다.

두 개의 침략 위협이 있을 경우 하나는 외교적 노력이나 경제 제재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 만큼 한국 안보 전략에도 미묘한 파장이 예상된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부 고위 관료를 지낸 도브 자크하임은 “예산과 연계된 접근방식은 기본적으로 대담한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게 만든다”며 “새 전략이 북한과 이란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당국자가 이날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과 관련, “지리적 배치, 작전상 탄력성, 정치적 지속성을 위해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그 일환으로 보인다. 이 당국자는 “지난해 10월 이명박 대통령 국빈 방문 당시 패네타 장관이 ‘한·미동맹은 동북아 안정의 초석이며 더 이상 강력할 수 없다’고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호주 방문 당시 “미국의 국방예산 감축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희생하는 형태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군 전문가들은 미국의 새 군사전략이 중국을 의식해 아시아 지역 안보를 중시하고 있지만, 유럽 지역의 군 감축에 따른 연쇄 파급 효과 면에서 아시아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국방비 감축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 14~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6차 한·미·일 3차 협력대화(TDNA)에서 그런 주장이 나왔다. 한 참석자는 “미국의 국방비가 감축될 경우 이는 전 세계 미군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비용을 분담하자는 요구가 한국 측에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미국 측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2개의 전쟁=냉전 체제가 와해된 1990년 미국의 콜린 파월 당시 합참의장 등이 주도한 지역분쟁 대처 방안이다. 미국이 동시에 2개의 전쟁에 대응해 승리한다는 전략이다. 미국이 주로 상정한 2개 지역은 한반도와 걸프만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