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그룹, 김정은에게 반기 들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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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사인도 김정일 따라하기 3일 북한이 처음 공개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 사위 부위원장의 서명 필체(아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명(위)과 흡사하다. ‘ㄱ’의 각도와 ‘ㅁ’의 모양, 한 획으로 ‘정’ 자를 처리한 게 유리판에 놓고 따라 하기로 연습한 필체란 분석이다. 북한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김정은의 필체를 김정일과 동일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위 사진은 1993년 4월 국방위원장에 취임한 김정일이 군부대에서 보낸 편지에 서명한 것이고, 아래는 김정은이 지난해 12월 30일 근로자들이 보낸 편지에 답하며 서명한 것.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평양의 권력 핵심층이 김정은 후계세습에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한 정치적 소용돌이가 일어날 수 있다고 통일연구원(원장 김태우)이 전망했다.

통일연구원은 3일 ‘2012년 북한정세 및 남북관계 전망’ 보고서에서 “김정은의 권력기반과 정치경륜이 완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 파워엘리트 그룹은 섣부른 권력 승계가 여러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은 장례기간 중 처음으로 북한군 대장 복장 차림으로 등장하고, 운구 행렬에서 김정은의 바로 뒤에 서는 등 후견그룹 중 최고 실세로 부상했다.

보고서는 “조기 권력승계가 ‘과도한 권력욕’이나 ‘불효자’ 등 부정적 이미지로 북한주민들에게 비치거나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이 김정은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 후계 승계가 지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 들어 국책 연구기관이 새해 북한 정세 전망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중앙일보와 JTBC가 공동으로 공개하는 통일연구원의 북한 정세 전망 요지.

 

◆김정일 서기실 승계=김정일 사망으로 권력층에선 감성이 지배하고 맹종적인 충성 기제가 발동할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누가 충신이고 간신인지 분별해 측근을 배치하는 일이 김정은에겐 시급한 과제다.

 승계가 순조로울 경우 김정일의 70회 생일인 다음 달 16일까지 추모 분위기를 띄운 뒤 김일성 출생 100년인 4월 15일을 계기로 김정은이 노동당 총비서나 국방위원장 직에 올라 체제 출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 때의 비서실인 금수산의사당을 해체하고 자신의 서기실을 가동했지만, 김정은의 서기실은 존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분간 김정일의 서기실이 이름만 김정은으로 바뀌어 통치활동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일은 보고서 위주의 ‘비준정치’를 선호했으나 김정은은 노동당의 집체적 지도체제를 본격 가동할 수 있다. 준비가 덜 돼 있는 만큼 김정은 자신의 독자적 결심보다 장성택·김경희의 보좌에 의존할 것이다. 이와 함께 2012년 강성대국 건설에 한껏 기대가 부풀었던 주민들은 허탈감에 빠질 수 있으며,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안감도 커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공포정치와 얼마간의 물질적 혜택으로 주민을 통제해 내부 결속을 다지려 할 것이다.

 ◆북풍보다는 사이버 공격=김일성 생일을 치른 후 5월께 북한이 대남정책에 관심을 보일 여력이 생기면 김정일 사망 때의 한국 측 조문 태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계산하려 들 수 있다. 과거와 달리 한국에서 북풍(北風)이 먹혀들지 않고, 대남 도발 시 한국의 반북 감정만 고조시킬 것이란 점에서 악수(惡手)를 두는 일은 자제할 것이다. 대신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선거정국 교란과 남남갈등 부추기기가 심화될 것이다. 김정은은 마치 ‘부상당한 동물’처럼 몸을 도사리며 체제 보호에 역점을 둘 것이다.

 대외관계에 있어 북한은 미국과의 우라늄 농축 중단 합의를 이행하는 제스처를 보임으로써 정치·경제적 실리를 챙기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써 북·미 관계의 진전을 이루고, 이를 김정은의 정치적 승리로 선전할 것이다. 기본적으론 정치안정과 경제회복이 절실한 북한은 중국을 후견국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지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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