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 장애인의 인생을 바꾼 단말기 … 긍정적 삶 개척하는 한국판 헬렌 켈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9면

나사렛대학교 신학과에 다니는 조영찬(41)씨가 최근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장애인 정보통신보조기기 이용수기 공모전’에서 대상(행정안전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정보통신보조기기를 활용해 장애를 딛고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체험담을 소개함으로써 자립·재활의지를 높이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공모전에는 시각·청각·지체장애인 등 136명이 참여했다. 조씨는 ‘한소네가 몰고 온 꿈의 무지개’라는 제목의 수기를 썼다. 점자정보단말기(한소네)를 활용해 인터넷 카페를 개설, 세상과 소통하는 한편 미국 헬렌켈러 국립센터에서 재활·자립생활 연수를 준비하는 등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

조영찬씨의 꿈을 향한 끝없는 도전은 아내 김순호(왼쪽)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진=나사렛대 제공]

‘한소네’가 몰고 온 꿈의 무지개

조영찬(시각1급·청각5급)씨는 두 가지 장애를 가졌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헬렌켈러와 같은 유형의 장애를 안고 평생 살아가야 한다. 한 가지 장애만 있어도 세상 살기가 녹록지 않은 그의 인생에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2004년 무심코 점자 신문을 읽다가 희망적인 소식을 접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정보단말기인 한소네가 출시됐다는 내용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기는 대다수가 음성을 이용한 지원체계인데 반해 이 단말기는 모든 정보를 점자로 출력해주는 기계다. 중복장애를 가진 그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구조였다. 희망이 생기는 듯 했지만 고민이 생겼다. 500만원대의 가격은 수급자인 그로서는 도저히 구입할 수 없는 고가품이었다. 다행히 수년이 흘러서야 정부의 장애인 보조기기 보급 사업에 포함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인생에서 첫 번째 신비가 아내와의 결혼이라면 한소네 단말기와의 만남은 두 번째의 경이로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배정받은 단말기가 손에 들어오면서부터 그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한소네를 받은 후로 꿈 같은 일들이 이어졌다. 단말기를 컴퓨터에 연결해 꿈에 그리던 광활한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비장애인처럼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혼자 검색할 수 있게 됐다. 메신저를 통해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도 있게 됐다. 각종 전자도서도 간편하게 다운받아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도 있었다.

신혼여행 선물하고 대학도 가고

2005년 어느날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 온 광고 하나가 그의 손길을 끌었다. 한 여행사에서 장애인들의 사연을 공모해 15명의 장애인을 선정, 일본 관광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자신을 만나 고생만 하던 아내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사연을 보냈고 얼마 후 꿈에 그리던 일본으로의 여행이 성사됐다. 일본여행을 계기로 이듬해인 2006년엔 일본의 헬렌켈러라 불리는 후쿠시마 교수와도 인연을 맺게 됐다. 후쿠시마 교수는 그와 같은 장애인으로 대학공부를 마치고 동경대 교수가 된 기적의 주인공이다. 그는 평소 후쿠시마 교수의 자서전을 읽으며 가슴 벅찬 환희와 동경을 품어 왔다.

 공부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은 2007년 대학 입학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나사렛대 장애학생고등교육지원센터는 유형별 장애인들의 욕구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고 그는 시각장애학생을 위한 교재입력·대필서비스 도움을 받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한소네 단말기는 수업시간에도 빛을 발했다. 학교 도우미가 강의 내용을 입력해 주면 노트북에 연결된 단말기로 전송돼 점자로 읽을 수 있었다. 동료와 대화할 때도 같은 방식을 이용해 대화가 가능했다.

장애인 불편 없는 세상 위해 끝없는 도전

조씨에게 있어 한소네 단말기는 떨어질 수 없는 몸의 일부와 같은 존재가 됐다. 그는 장애인의 현실을 알리고 인권을 지키기 위해 끝없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장애를 안고 사는 중복장애인을 돕기 위한 복지제도가 전무한 대한민국에서 이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이들의 실상을 홍보하기 위해 인터넷(Daum)에 ‘설리반의 손 헬렌켈러의 꿈’이란 카페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사연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관심 있게 지켜보던 한 감독에 의해 ‘달팽이의 별’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시청각장애인을 포함한 중복장애인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처럼 별도의 장애 유형으로 분류돼 적절한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해 점자와 수화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도우미를 지원하는 등 의사소통과 문화생활을 보조하도록 체계적인 서비스가 제공된다.

 그는 나사렛대에서 신학과 사회복지학 두 전공을 이수하기 위해 다른 학생보다 서너 배 이상 열정과 시간을 투자했고 2월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그는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복지시스템이 발달된 미국에서 공부하기 위해 영어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시청각장애인들은 점자단말기 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이용하거나 쇼핑, 대중교통을 혼자서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고 꿈 같은 환경이다. 그곳의 복지정책과 지원시스템을 공부해 모든 장애인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강태우 기자

 
◆한소네 단말기=시각·청각·지체·뇌병변 장애인들이 독서·컴퓨터·인터넷 등의 정보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기나 특수 소프트웨어(S/W)를 말함. 시각장애인이 문서작업, 이메일, 인터넷검색, 콘텐트 활용과 같은 응용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점자정보단말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