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피크 땐 민간 빌딩 비상발전기 2만6000개 활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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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이 북한산 암벽의 자일에 매달려 있는 느낌입니다.”

 남호기(62·사진)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전력업계에서 44년을 일한 대표적인 베테랑 경영인이다. 발전소 교대 근무부터 시작해 한마디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 위기에 처한 전력거래소를 이끌 ‘구원투수’로 온 것도 그런 경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런 그도 “아찔하다”고 말할 정도로 요즘 전력 수급난은 심각한 상황이다. 위기는 이번 겨울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란 게 그의 예상이다. 발전설비가 제대로 확충되는 2013년 하반기 이전까지는 겨울과 여름마다 전력 보릿고개가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올해는 대통령 선거 등 대형 이벤트가 많아 더욱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국민에게 절전을 호소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는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빌딩 등에 산재한 비상발전기를 여름·겨울 피크 때 활용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개별 발전기의 용량은 작지만 전국 2만6000여 개를 모두 돌리면 급할 때 원전 몇 기 분량의 전기를 확보할 수 있다. 또 정보기술(IT)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정부와 협의 중이다. 전력수급 상황에 따라 대형 건물의 냉난방기를 전력거래소에서 직접 껐다 켰다 하는 직접 제어 시스템을 구축하면 400만~500만㎾의 예비전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는 “여름·겨울 잠깐의 피크 때 돌리려고 무조건 발전소를 많이 지어 놓는 것도 낭비”라며 “발달된 IT 기술을 활용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전사태를 계기로 국가적 차원에서 전력체계 전반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그는 “수급뿐만 아니라 송·변전 시스템에도 불안 요소가 잠복해 있는 등 손봐야 할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형 정전사고가 난 여천·울산 공단의 변전소는 1970년대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설비를 확충할 틈도 없이 문어발식으로 계속 선로를 꽂아 넣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전력당국의 조직 보강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시적 태스크포스(TF)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전력정책을 짜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전력청 설립 등을 검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 전력거래소(KPX) = 전력 시장 운영과 수급관리의 ‘두뇌’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매순간 변하는 수급상황에 따라 전력 가격을 매기고 발전사와 판매사(한전) 사이의 거래를 관리한다. 실시간으로 수급을 관리해 전국의 발전소에 가동·정지 지시를 내리고 이상 상황이 생길 경우 비상 조치를 취한다. 정부의 중장기 전력수급계획 수립을 실무적으로 뒷받침 한다. 2001년 한전에서 독립했다. 정전사태 이후 중앙급전소를 중앙전력관제센터로 명칭을 바꾸고 이사장 직속으로 편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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