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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위기 극복하려면 중산층 지갑부터 채워라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원제 After Shockㆍ애프터 쇼크)』라는 책은 2011년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럽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기둔화의 원인이 ‘소득과 부의 불균형’이라는 지적은 신선한 파장을 불러왔다. 이 책은 “성장의 과실이 소수의 부유층에 집중되고,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경제발전의 동력을 잃었다”고 강조한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중산층을 튼튼하게 하고 부의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다양한 사례와 통계를 통해 소수 기업이 성장을 이끈다는 ‘낙수효과(Trickle down-effct)’ 식의 기존 경제정책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올해도 ‘부의 양극화’는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중앙SUNDAY는 저자인 로버트 라이시(Robert B Reichㆍ66ㆍ사진) 미국 UC버클리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를 인터뷰했다.

라이시 교수에게 글로벌 경제 불안이 진정되지 않는 이유와 그 해법, 2012년 글로벌 경제 전망을 들어봤다. 인터뷰 시점은 지난해 12월 하순으로 e-메일로 대화의 미진한 부분을 여러 차례 보완했다. 그는 e-메일 인터뷰에서 “근로자가 곧 소비자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서 중산층이 구매력을 되찾아야 경제위기 극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유층은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중산층에게는 소득보조와 세금인하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중산층의 소비가 촉진되면 소비 증가는 경제 회복과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글로벌 경제에 위기의 그림자가 3년 만에 드리웠다. 원인이 뭔가.
“글로벌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의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총생산에 비해 총수요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생산한 것을 소비할 중산층 수요가 충분치 않다. (기본적인 과잉생산 이외에도) 부의 양극화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1920년대 말 시작된 대공황 이후 부유층과 그 이하 계층 간의 소득 불균형이 가장 심각하다. 경제발전과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상위 1%에 집중되고 있다. 대다수 평범한 이들은 그 성과를 제대로 공유하지 못한다. 많은 가정은 가계를 원활하게 꾸리는 데 필요한 구매력이 부족하다. 수입이 괜찮은 질 좋은 일자리가 필요한데 그런 일자리가 많지 않다.”

- 국가별로 상황이 다를 텐데.
“소득 불균형 확대와 중산층의 구매력 상실은 세계적 현상이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의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더 큰 박탈감을 느낀다. 그들에겐 풍요를 누린 기억이 뚜렷하다. 미국인의 임금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30년간 거의 오르지 않았다 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일정 생활 수준을 유지해야 하니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린 것이다. 지금 미국의 중산층은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다. 선진국 이야기만은 아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둔화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중국인들의 소득 증가율이 생산 증가율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균형이 심화하면 사회불안이 터져 나올 수 있다.”

- 왜 불균형이 심해졌나.
“기본합의(Basic Bargain)가 깨진 탓이다. 기본합의란 쉽게 말하면 ‘근로자=소비자’ 등식이 성립하는 상태다. 근로자가 자기 회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살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임금을 받는 것이다. 가령 1914년 포드자동차는 자동차 라인 근로자들에게 당시 일반 근로자 임금의 3배를 주는 파격적 결단을 내렸다. 그러자 2년 만에 이익이 2배로 늘어났다. 이익 증가의 일등공신은 포드의 근로자였다. 그들은 임금이 뛰자 자기 회사에서 만든 차를 샀다. 새 차 수요 증가가 고스란히 포드의 이익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런 기본합의는 1930년대 대공황 때 무너졌다가 회복돼 70년대까지 이어졌다. 특히 50~70년대에는 임금이 꾸준히 오르면서 미국 중산층의 번영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기본합의는 80년대 이후 다시 깨졌다.”

- 왜 깨졌나.
“1980년대부터 공장 자동화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많이 잃었다. 해고 근로자가 새로 찾은 일자리는 과거만큼 충분한 임금을 보장하지 않았다. ‘작은 정부’론이 대세를 이루면서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고 많은 공공사업을 민영화했다. 감세 정책의 혜택은 상류층에 돌아갔다. 그때부터 근로자의 임금이 정체됐다. 생산성은 계속 오르고 기업 이익이 늘어나는데도 그랬다. 그러는 사이 뉴욕 월가로 상징되는 금융경제의 위상이 높아졌다. 주식시장의 성공이 미국 경제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척도가 됐다. 대공황 직전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결국 2008년 거품이 터져버렸다.”

- 부자 증세가 필요한가. 한국에서도 논란이 거세다.
“한국의 상황은 자세히 모르지만 미국의 경우엔 부자들의 세율을 인상해야 한다. 나는 연 41만 달러(4억7200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1% 부유층에게 55%의 세율을 부과하자고 공개 제안했다. 오늘날 미국의 소득 상위 1%는 80년래 가장 많이 버는 대신 가장 적게 세금을 낸다. 1970년대 말 미국인 총소득에서 상위 1%가 가져가는 비율은 9%에 미치지 못했지만 2007년에는 23.5%에 달했다. 반면 한때 70~90%에 달했던 상류층의 소득세율은 25~39%로 낮아졌다. 미국에서는 부자한테서 세금을 더 걷는 문제로 엄청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논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의 파장은.
“예단할 단계는 아니다. 분명한 건 광범위한 미국의 중산층이 불안과 좌절·분노를 공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월가 점령’ 시위로 나타났다. 중산층은 (경제를 움직이는) 게임의 법칙이 상위 1%와 권력자에게 유리하게 짜였다고 느낀다.”

- 비정규직 등 저소득층 문제가 심각하다.
“나는 근로소득세제 혜택, 저소득층을 위한 임금 보조금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반면 부유층 세금은 올려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2008년 금융위기를 되짚어보자. 당시 미 정부의 대처는 어땠나.
“잘못됐다. 특히 금융위기를 초래한 월가에 대한 대처법에 문제가 있었다. 당시 월가의 대형 은행들은 부실화했다. 차입비율이 높고, 리스크가 과도했다. 그런데도 부시 정부와 차기 오바마 정부는 은행을 수렁에서 구하려고 엄청난 규모의 긴급구제금융을 단행했다. 이 돈은 납세자한테서 빌린 것이었다. 긴급구제가 미국의 상권과 일자리를 지키려는 조치로 포장됐지만 사실 어느 쪽도 아니었다. 은행의 목숨을 연장하는 조치에 불과했다.”

- 유럽 재정위기가 장기화하고 있다.
“일단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자.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회원국들이 부채를 줄이겠다고 정부 예산을 삭감할 수 있을까. 힘들 것이다. (국민 반발도 있겠지만) 현 상황에서 예산을 줄이면 유럽은 더 큰 경기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 그러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부채를 줄이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경기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회복돼야 한다 . 펀더멘털(거시경제의 기조)이 좋아야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부채를 줄일 수 있다. 부채 감축이 가능하려면 유로존 국가들의 연 평균 경제성장률이 3% 이상으로 회복되고, 실업률이 각국의 목표 수준 아래로 떨어져야 한다. 그런 다음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적자 감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 올해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큰 선거가 많다. 경제 불안이 선거에 미칠 영향은.
“경제적 스트레스가 장기화하면 정치도 위험해진다. 국민 불만을 기회 삼아 반동적인 흐름과 분노를 부추기는 선동가가 나올 수 있다. 미국에서는 고립주의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무역 정책과 미국 내 이민자 정책이 폐쇄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 올해 세계 경제의 희망을 찾자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이 몇 년 더 지속될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투자에서 비롯된다. 지금은 경기 침체의 언저리다. 각국 정부가 긴축을 택하면 투자가 위축되고 기술 발전이 더뎌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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