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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한국개혁의 해결사"

중앙일보

입력

그가 누구든지, 한 인물이 나라를 살린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난세(亂世)일수록 사람들은 영웅호걸이 출현해 근사한 해법을 제시해 주길 기대한다. 그게 마땅하지 않을 때는 역사적 인물 중에서 모셔오는 지혜도 괜찮다.

저자는 그런 기지를 살려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한비자(韓非子.BC 280~233.책의 이름이기도 하다)를 이 땅의 해결사로 불러온다.

2천여년 동안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매도당한 그를 복권시켜 피로 증상을 보이는 '한국호(號)' 개혁의 이념적 지주로 삼자는 것.

한비자는 관중과 상앙에서 비롯된 법가(法家)사상의 완성자로, 엄격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을 통치술로 제시한 현실주의자다. 인의(仁義)에 바탕을 둔 덕치(德治)를 중시하는 유가와는 정반대편에 있다.

저자는 "이런 한비자의 지혜를 빌려 개혁을 완수하자" 는, 개혁론자들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을 한다.

한비자와 경제학의 접점은 바로 인간의 이기심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익 추구를 우선하는 사람의 본성(本性)과 아담 스미스 이래 경제학의 불변의 진리로 인식하고 있는 이윤추구 행위를 일치시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러나 그런 욕망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에 의해 조정된다고 해도 가끔은 알력을 낳게 마련. 여기서 법치가 작동한다.

오늘날로 보면, 만인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엄격한 법과 제도의 정비를 통해 사회의 '모순' (矛盾 : 창과 방패라는 뜻으로 한비자에 나온다)을 바로잡아야 한다. 상벌이야말로 적절히 동원할 만한 당근과 채찍이다.

저자는 이런 주장을 재벌개혁과 부정부패, 교육, 의약분업 등 당면 문제로 확대한다.

재벌개혁은 철저히 시장원리에 맡겨야 하고, 부정부패 근절을 위해 의리와 인맥.인정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청산해야 한다고 나선다. 학원의 완전 자율화와 과외 금지조치 철폐론도 서슴없이 제기한다.

해결기미가 안보이는 의사들의 폐업사태에 대해서는 한비자 비내(備內) 편의 '의사와 관 짜는 사람' 의 이야기를 끌어들여 우회적으로 비꼰다.

"의사가 남의 상처를 빨고 남의 나쁜 피를 머금는 것은 골육의 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익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이래서 저자는 의사들의 이익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도의 보완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로 제도경제학이 전공. 참고로 본지 8월 16일자 15면에 실린 계명대 철학과 이진우 교수의 '신유가론' 은 저자와 정반대 입장에서 유가사상을 옹호하면서 21세기 난제 해결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어 비교해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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