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군수가 브로커에게 ‘인사권 할당’ 각서 써주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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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완묵 임실군수가 2007년 10월 예비후보로서 선거브로커에게 ‘당선되면 비서실장 자리와 인사권·사업권의 40%를 보장한다’는 각서를 써주었다고 언론에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당시 또 다른 예비후보도 비슷한 각서를 써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태가 임실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발생했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년 지방선거 역사에서 많은 위법과 추문이 있어왔다. 대개 유권자에게 금품·향응을 제공하거나 경쟁후보를 매수하는 것이었다. 이번처럼 특정인에게 자리와 인사권을 약속하는 ‘입도선매’형 비리는 드문 일이어서 충격이 적지 않다. 유권자나 후보의 매수는 일회성으로 끝나지만 ‘인사권 할당’은 인사비리와 부실 행정이 임기 내내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인사·사업권의 40%를 할당하면 사실상 군수는 허수아비고 바깥의 브로커 실세가 군정(郡政)을 좌지우지하는 꼴이다. 이는 지자제에 대한 위협이며 지방행정 농단이다.

 당시 보궐선거가 실제로 시행되지는 않았고 강 군수가 이런 사례를 폭로하면서 선거브로커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그가 실제로 인사·사업권을 할당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선거브로커들이 다른 형태로 군수 업무에 영향을 행사했을 개연성은 있다.

 이번 사건이 터진 임실은 지방선거가 실시된 이래 당선된 군수 3명이 감옥에 가거나 중도하차한 곳이어서 파장은 더욱 충격적이다. 이번 일을 폭로한 강 군수도 지난해 6월 선거에서 8000여만원의 불법 선거자금을 받은 혐의로 최근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에서 형이 확정되면 임실은 또 선거를 치러야 한다.

 경북 청도에서는 군수 2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하고 또 다른 군수에 대한 선거부정 수사과정에서 주민 2명이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1995년 시작 때만 해도 지자제는 민주주의와 지방의 발전을 위한 개혁으로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매수·수뢰와 ‘인사권 노예각서’ 그리고 선거용 세금낭비라는 추문에 시달리고 있다. 지자제에 대한 일대 개혁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