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인 부모 없는 틈타 3개월간 권군 집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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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스토리

같은 반 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유서를 남기고 지난 20일 자살한 대구의 중학생은 3개월여 동안 300여 차례 폭행·협박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 수성경찰서는 25일 대구 D중학교 2학년 권모(13)군이 지난 9월부터 최근까지 서모(14)·우모(14)군 등 같은 반 학생 2명에게 “온라인게임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300여 차례 폭행과 협박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초등학교 동창인 권군과 서군은 지난 3월부터 컴퓨터를 하며 어울렸다. 괴롭힘은 지난 9월 시작됐다. 서군의 부탁을 받고 그의 이름으로 온라인게임(‘메이플스토리’)을 하다 해킹을 당해 모아 놓았던 아이템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후 “네가 책임지라”며 권군에게 게임을 강요했다. 이는 오래할수록 레벨(등급)이 올라가는 게임이다. 서군은 권군 부모가 모두 교사여서 낮시간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집으로 찾아가 게임을 하라고 요구했다.

 속도가 느리면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10월부터는 서군의 게임 친구인 우군도 가세했다. 격투기를 배우는 권군 형의 목검 등으로 엉덩이와 허벅지·어깨 등을 무차별 폭행했다. 폭행은 권군의 어머니가 퇴근하기 전인 오후 4시부터 5시30분 사이 권군의 집에서 이뤄졌다. 또 녹음기 코드를 뽑아 목에 묶은 뒤 끌고 다니고, 문구용 칼로 손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협박하기도 했다. 이달 초에는 서군이 유명 브랜드 의류를 사 달라고 요구해 가져갔고, 교과서 두 권과 돈 25만원도 빼앗았다.

 그러나 유서에 나온 물고문에 대해서는 진술이 엇갈린다. 가해자를 대질 신문한 결과 한 학생은 “친구가 세면대에 물을 받아 놓고 권군의 머리를 눌렀다”고 진술한 반면 다른 학생은 부인했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통해 사실 여부를 가리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3개월간 40여 차례 권군 집을 드나들며 한 번에 최고 10대까지 때린 것으로 나타났다”며 “시신 검안에서 권군의 엉덩이·종아리·어깨 등이 심하게 멍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권군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경찰의 문자메시지 복원 결과 서군은 9월 13일부터 숨지기 하루 전인 19일까지 300여 차례 메시지를 보냈다. 가해자들은 ‘디질래(죽을래), 지금 (게임을) 빨리 해라. 돈 벌어라’는 글을 보냈고, ‘요즘 안 맞아서 영 맛이 갔네’ ‘문자 답 늦을 때마다 2대 추가’와 같은 협박도 했다. 마지막 메시지는 자살 전날 자정쯤 ‘게임 빨리 안 하나’ ‘야, 대답 안 하나’였다.

대구=홍권삼 기자

◆메이플스토리=2003년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넥슨의 대표 게임. 국내 1800만 명을 포함해 세계 60여 개국에서 1억 명 이상이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할을 수행하면서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롤플레잉게임(RPG)의 하나로, 초등학생 사이에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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