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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정주영 키즈’ 10만 명 양성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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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박대혁
리딩투자증권 부회장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선수의 극적 우승 순간은 10년이 흐른 지금도 감동을 준다. 그는 연장전에서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공을 쳐내는 투혼으로 당시 외환위기로 고통을 겪던 국민에게 커다란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 맨발 투혼은 우리 청소년에게 빛나는 롤 모델(Role Model)이 됐고, 당시 10~12세였던 박세리 키즈에게 세리 언니처럼 돼야겠다는 꿈을 꾸게 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피나는 노력으로 성장한 박세리 키즈는 연이어 세계무대에서 우승하면서 여자골프 세계를 장악해 버렸다.

 요즘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나왔지만 일할 곳을 못 찾아 헤매는 청년이 너무 많다. 그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나 기업은 청년실업 문제 해결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 방법을 찾았다 하더라도 해결능력을 갖고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 청년들은 이러한 현실에 분노할 수밖에 없어 ‘앵그리(Angry) 세대’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필자 생각에는 박세리 키즈 효과를 원용하면 우리나라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열 살 여자 어린이들이 박세리의 투혼을 보고 세계적인 골프선수가 돼야겠다는 꿈을 꾼 지 불과 10년 만에 세계 여자골프를 휩쓴 것처럼 꿈을 구체적으로 꾸고 그 꿈을 향해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청년들도 자신의 롤 모델을 찾고 그 사람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필자가 추천하는 롤 모델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1940년 25세의 청년 정주영은 ‘아도서비스’라는 작은 자동차 수리공장을 만들어 오늘의 ‘현대자동차’라는 세계적 기업을 탄생시켰다. 정주영과 같은 기업가 덕분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둘째로 못사는 나라에서 불과 60년 만에 세계 9위의 무역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하는 기적을 이뤄냈다.

 우리나라에 10만 명의 ‘정주영 키즈’를 만들어보자. 물론 10만 명이 현대자동차와 같은 거대 기업을 다 만들 수는 없겠지만, 규모가 작더라도 자기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인 ‘글로벌 히든 챔피언(Global Hidden Champion)’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주영에 대한 재평가부터 이뤄져야 한다. 세계적으로 훌륭한 기업가를 갖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를 영웅으로 대우하는 데 인색했다. 그래서 젊은 청년들이 그를 롤 모델로 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여름 케냐에 가 800명의 대학생 앞에서 강연한 적이 있다. 이런 내용이었다.

“기업가 정주영이 당신들보다 더 가난했었고 고등교육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7세에 아버지의 소 판 돈을 갖고 상경해 여러 난관을 뚫고 현대그룹을 만들어 냈다. 당신들도 정주영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케냐도 한국처럼 잘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케냐 학생들이 정주영 스토리에 큰 감동을 받아 “정주영, 정주영”을 외치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 영웅을 잊고 있는 것일까. 정주영 키즈를 대량 육성해 낼 수 있는 민족의 값진 무형자산인데 왜 활용하지 않고 있는가.

세계의 석학 피터 드러커 교수는 생전에 기업가 정신이 세계에서 가장 잘 발현된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고등교육이 허용되지 않았고 한국전쟁으로 국토가 완전히 파괴됐지만, 오늘날 한국은 20여 개 산업부문에서 일류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기업가 정신이 많이 쇠퇴한 듯하다. 이제 젊은 세대가 다시 한번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정주영과 같은 선배 기업가를 롤 모델로 삼고, 글로벌 히든 챔피언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노력하는 정주영 키즈가 10만 명 이상 생겨나야 한다. 그러면 청년실업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다. 이는 미래 어느 순간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소수의 대기업에 위기가 닥칠 것에 대비한 방책도 될 것이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끝나기도 전에 유럽에서 전개되고 있는 경제위기 속에서 맞이하는 우울한 연말이다. 특히 청년들은 취직하기도 힘들고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암울한 현실을 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청년들이여, 꿈을 꿔 보라! 청년 정주영보다 더 큰 꿈을 키워 보라. 그리고 매일 그 꿈을 생생하게 꾸어 보라. 그러면 그 꿈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박대혁 리딩투자증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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