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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미국 방송가 리얼리티 쇼의 대부 켄 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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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미국 NBC 엔터테인먼트 부문 부사장인 에드윈 정은 지난달 j섹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팔이 안으로 굽는’ 과찬인 줄 알았다. 한데 같은 소리를 하는 이가 또 있었다. 미국 최대 외주 제작사 ‘텐바이텐(10X10) 엔터테인먼트’의 켄 목(Ken Mok·50) 대표다. 중국계 미국인인 그는 미국 방송가에선 ‘리얼리티 쇼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 ‘아메리칸 넥스트 톱모델(한국명 도전! 수퍼모델)’ ‘푸시캣 돌스’ 등 손대는 프로그램마다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그런 그가 지난달 18일 서울을 찾아 한국 방송에 대해 호평을 쏟아냈다. “미국에서도 충분히 대박 칠 예능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며 한국 방송의 미국 진출에 가교가 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대체 어디서 ‘예능 한류’의 가능성을 발견했을까. 그 ‘감’(感)의 근거부터 궁금해졌다.

글=이도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켄 목(오른쪽)과 한국인 아내 이혜리씨.

●한국 프로그램을 얼마나 봤나.

 “4~5년 전부터 게임·토크쇼·리얼리티 쇼·드라마까지 모두 봤다. 심지어 어제는 한국 영화 ‘미스터 아이돌(2011)’에도 잠깐 빠져들었다. 한국 프로들엔 대개 미국에서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내용이 많다. 난 10분 정도만 봐도 대충 감이 잡힌다. 미국에서 성공시키려면 포맷을 어떻게 바꾸고, 어느 정도 제작비용이면 되겠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보고 나면 늘 흥분된다. 지금 미국은 새로운 포맷·콘텐트·사람 모두를 찾고 있으니까.”

●특히 기억에 남는 프로는.

 “‘무한도전’ ‘나는 가수다’ 모두 포맷 자체가 독특하다. 미국 문화에 맞게 살짝 조정하기만 해도 될 것 같다.”

●아시아에서 유독 한국 방송만 새롭다고 보는 건가.

 “예능에서만큼은 가장 강국이다. 중국·일본·홍콩·마카오 등 여러 나라의 예능 프로를 모두 봐도 그렇다. 한국 방송은 서양 문화에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강대국일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굉장히 낯설다. 심지어 내가 중국계임에도 말이다. 중국은 현대화하고 있지만 아직은 좀 모자라다. 한국은 이미 영화도 미국에 진출한 지 오래됐고, K팝도 미국에 들어왔다. 예능 프로 진출도 당연한 수순 아닌가. 게다가 한국 연예인들, 정말 잘생기고 예쁘고 키도 크다!”

●누가 인상적이었나.

 “말 그대로 정말 모두라고 말하고 싶다. 음, 지난 밤엔 가수 팀의 콘서트를 봤다. 정말 외모도 외모지만 카리스마에 재능까지 놀라웠다. 심지어 영어까지 능숙하더라. 아시아 연예인들이 미국에 진출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내가 그들을 미국으로 진출시키고 싶다.”

●예능 한류가 가능하려면.

 “포맷은 독특해야 하지만 소재는 평범할수록 좋다. 패션·뷰티·노래·춤처럼 누구나 즐기는, 한마디로 ‘유니버설 랭귀지’로 볼 수 있는 프로를 만들어야 한다. 아, 남녀의 로맨스도 영원한 히트 소재다.”

 이런 대답들은 경험에서 나온 얘기였다. 그는 패션·뷰티·노래·춤을 이용해 리얼리티 쇼를 만들었고, 모두 대박을 쳤다. 특히 일반인들이 모델이 되기 위해 다양한 미션을 펼치는 ‘도전! 수퍼모델’은 전 세계 150개국에 방영되면서 17시즌까지 제작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50개 나라에서 이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 한 방송을 만들었을 정도다. ‘메이킹 더 밴드(Making the Band)’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 스타를 꿈꾸는 청소년을 경쟁시키고, 최종 승자들끼리 하나의 ‘보이 밴드’를 만드는 내용이다. 그는 “2000년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오디션 프로가 대세가 될 것을 예감했다”고 했다.

●왜 리얼리티 프로가 대세일까.

 “시트콤과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피곤해졌다. 원래 뭐든 진짜(리얼리티)라고 하면 더 재미있지 않나. 짜인 드라마보다 더 복잡하고 새로우니까.”

●리얼리티 쇼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첫째도, 둘째도 좋은 스토리다.”

●각본이 없는데 좋은 스토리라니.

 “그래서 캐스팅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재미있는 사람들을 골라 넣어야 한다. 그들끼리 부딪치면서 새로운 얘기가 나올 만한 설정을 만드는 거다. 특히 시즌이 계속되면 새로운 미션을 만드는 게 아주 중요하다. 오디션 프로에선 경쟁심과 예능 요소가 골고루 들어가야 한다.”

●출연자들을 뽑는 기준은.

 “정말 승자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절실해야 한다. 둘째는 성격·배경·출신 등이다. ‘과거에 어떤 역경이 있었고, 이것을 어떻게 극복했나’라는 점이다. 그런데 모두가 착하면 안 된다. 모든 스토리에는 갈등이 있고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이기적인 사람과 친절한 사람, 그들이 만나 부닥치고 그것이 하나의 스토리가 될 수 있다. 경쟁은 그 점을 이용하는 굉장히 좋은 요소다. 리얼리티 쇼에 나오는 이들은 진짜 생활에선 잘 볼 수 없는 인물일수록 좋다.”

●사람 보는 눈이 남다르겠다.

 “맞다. 그것도 빨리. 20초 안에 사람을 파악한다. 행동이나 눈빛만 봐도 방송에 어떻게 비칠지 알 수 있다.”

●훈련을 하나.

 “쇼핑몰에 아내와 갔다고 치자. 한 부부가 지나가는 걸 보고 그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여자는 어떤 프러포즈를 받았을까, 아이는 있나 등등을 쉴 새 없이 상상한다. 어떨 때는 직접 묻기도 한다. 그야말로 사람을 ‘읽는 거다’.”

●편집의 유혹은 없나.

 “‘도전! 수퍼모델’의 경우 편집 순서를 바꾸거나 하진 않는다. 행동이 과격해도 그냥 내보낸다. 그래서 출연자들이 방송을 보고 투덜댈 때가 많고 화도 낸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아니라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다. 처음부터 시청자가 관심 가질 만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짜놓으면 굳이 편집으로 재미를 만들 필요가 없다.”

●오디션 프로의 메시지는 뭔가.

 “경쟁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경쟁은 우리 삶 그 자체 아닌가. 또 하나는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가령 ‘도전! 수퍼모델’의 출연자들은 절대 예쁘지 않다. 심지어 학창시절 놀림 받은 상처가 있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방송은 이들이 결국 성공하는 걸 보여준다.”

 켄 목 대표는 방송과 전혀 상관없는 공부(미국 보스턴대 경영학)를 했다. 무역회사를 다니다 1990년 CNN 기자로 방송에 발을 들였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인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목표를 서서히 이뤄갔다. 기자에서 뉴스 프로듀서로, 2년 후엔 한 프로그램 외주제작사로 옮겨 ‘빌 코스비 쇼’ 등 코미디 프로그램 PD로 일했다. NBC·ABC 등 방송국을 옮겨다니며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MTV 프로덕션에선 부사장까지 올랐다.

●전공을 살리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한마디로 TV키즈였다. 14살 때 이미 프로듀서가 될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전통적인 이민 1세대인 부모님은 변호사·회계사·의사 같은 직업을 갖기 원하셨다. 나중에 무엇이 되더라도 부모님 뜻을 저버리기 어려웠다.”

●멘토가 있었나.

 “막 방송일을 시작할 때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나를 바로 알아봤다. 열심히 하고 호기심이 많고 늘 배우려는 자세를 예쁘게 봐줬다. 나는 아시아 가족을 소재로 시트콤을 써서 그를 출연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80년대 말은 아직 시트콤이 이른 때라 불발됐다. 어쨌든 이후 그의 추천서 덕에 나는 NBC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 후 예능 전문 프로듀서가 됐고, 결국 아시아인을 중심으로 한 시트콤 ‘All American Girl’을 마거릿 조와 만들었다.”

●‘도전! 수퍼모델’의 진행자 타이라 뱅크스도 유색 인종이다. 통하는 점이 있나.

 “물론이다. 우리는 다양성을 TV에 끌어들이는 데 협력한다. 모든 출연자 중 50% 이상이 유색인종이지 않은가. 아프리카·라틴·아시아계를 모두 끌어들인다. 시청자들이 인종의 다양성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모델 촬영을 홍콩으로 간다거나, 출연자들이 잘생긴 아시아 남자들과 어울리는 로맨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당신의 성공,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성공과 비슷할까.

 “재미있는 질문이다. 나는 경쟁상대를 두지 않는다. 내 일에만 생각하고 몰두한다. 집에 TV 7대를 둘 정도다. 하지만 출연자들이 그런다면 문제다. 아무 스토리가 없지 않나. 말하고 보니 리얼리티 프로가 진짜 리얼리티가 아니다. 하하.”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가족이다. 아내와 나의 쌍둥이 아이들! 그들은 내가 어떤 상태가 돼도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j 칵테일 >> 한인 아내 이혜리씨 … 이산가족 아픔 담은 책 미국서만 50만 부 판매

2011년 1월 15일자 j 에 소개된 이혜리씨.

부부는 닮는 걸까. 켄 목 대표의 아내도 남편 못지않은 다양한 이력을 지녔다. 아내 한국계 미국인 이혜리씨는 NBC·CBS 등에서 스크립터·PD 등으로 일한 방송인 출신. 그러다 1996년엔 소설 ‘할머니가 있는 풍경’을 발표했다. 한국 분단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자신의 할머니 백홍용씨의 삶을 그린 논픽션으로, 이 책은 미국에서만 50만 부 이상 판매됐다. 또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이산가족의 고통과 탈북자들의 현실을 알리기도 했다.

 남편처럼 ‘리얼리티’에도 도전했다. 이씨는 6개월을 ‘남장여자’의 상태로 살았고, 그 경험을 독창적 다큐멘터리 무대극으로 올렸다. ‘나 같은 남자(Macho Like Me)‘라는 이름을 단 공연은 남자들에 대한 여자들의 오해와 편견을 깨기 위해 제작됐다.

 그래서인지 부부는 서로에 대해 ‘최고의 파트너’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특히 남편은 새벽 두 시에도 아내를 깨워 대본을 읽어보라고 할 만큼 아내에게 의지한다고 했다. 이미 5년 전부터 한국 프로그램을 보라고 권유했던 이도 역시 아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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