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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반한 한국 (41) 왕립아시아학회 제니퍼 플린 이사의 안동 음식 답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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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반주로 찜닭 게눈 감추듯 해치워

많은 외국인은 흔히 한식이 짜고 매울 거라고 생각한다. 기껏 한국에 와서는 서울 음식만 먹다 가는 관광객도 많다. 그들 모두에게 서울을 벗어나 지역 고유의 향토음식을 과감하게 시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음식의 유래에 얽힌 역사·문화적인 배경을 알고 나면 아마 한식이 두 배로 맛있을 것이다.  

얼마 전 경북 안동을 갔다 왔다. 현재 이사로 활동 중인 왕립아시아학회 한국 지부에서 떠난 안동 문화유산 답사 때문이었다. 안동에서 원어민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어 이번 답사에는 내가 가이드 역할을 담당했다.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는 한국에 체류 중인 내·외국인이 모여 한국을 탐구하고 홍보하는 단체다. 이 단체 활동에서 내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한식이다. 음식이야말로 한 나라의 문화적인 총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동 답사에는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안선재(69·본명 브러더 앤서니) 회장과 한스 울리히 자이트(60) 주한 독일 대사 부부 등 20명가량이 동행했다. 나는 호기심에 찬 학회 회원에게 하회마을과 탈춤 말고도 안동만의 독특한 음식 문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안동시장으로 향했다. 안동의 명물 안동찜닭을 먹기 위해서였다.

 안동찜닭은 닭과 당면에 감자·양파 등 갖은 야채를 섞어 간장 양념으로 버무린 요리다. 한식은 고춧가루나 고추장으로 맛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안동찜닭은 햇볕에 바싹 말린 고추를 큼직하게 썰어 걸쭉한 양념 위에 얹는다. 그래서 숱하게 한식을 접한 나도 처음엔 다소 신선하게 느껴졌다.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회원들. 간장 양념이 잘 밴 안동찜닭을 먹느라 한동안 다들 말이 없었다.

안동찜닭은 안동 지역 양반이 별미로 즐기면서 서서히 알려졌다. 안동에 찜닭을 파는 식당이 생긴 것은 불과 30년 전이라고 한다. 이후 안동찜닭은 주변 식당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몇 해 전에는 전국적으로 유행하며 프라이드치킨 체인의 대항마로 떠오르기도 했다.

 내가 점찍은 곳은 한옥을 개조한 찜닭 전문점이었다. 학회 회원들과 함께 옹기종기 둘러앉아 안동찜닭을 맛봤다. 반주로 막걸리를 홀짝이며 양념이 밴 살코기를 음미하다 보니 그릇마다 순식간에 바닥이 드러났다.

 점심 식사로 배를 든든하게 채운 우리 일행은 안동 시내 유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두루 엿볼 수 있는 태사묘와 임청각을 둘러본 다음 통일신라시대에 세웠다는 칠층전탑도 둘러봤다. 안동 시내 답사를 마친 다음에는 버스를 타고 병산서원으로 갔다. 빼어난 강산에 둘러싸인 옛 건물에서 안동 특유의 유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배어나왔다.

 안동에는 병산서원이나 도산서원 말고도 훌륭한 유학자를 배출한 서원이 많다. 자연히 제사를 비롯한 유교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 밥상에 오른 헛제삿밥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헛제삿밥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재미있었다. 글공부를 하느라 집안 제사에 늦은 유생을 위해 가족이 제사 음식을 비벼 먹도록 차려준 게 시초가 됐다는 설이다. 비빔밥에 흔히 쓰이는 고추장 대신(예부터 고추는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 제사 음식에는 쓰지 않는다) 밥과 반찬을 간장·참기름으로 버무리는 것이 특이했다.

기름 자르르 자반고등어엔 안동소주 제격

헛제삿밥과 함께 나온 자반 고등어도 안동의 유명한 향토 음식이었다.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바다 생선 고등어를 안동으로 가져가려면 뱃길로 낙동강 상류를 한참 거슬러 올라야 했다. 현대적인 냉장 기술이 나오기 전이라 기름진 고등어를 상하지 않게 보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동 사람들은 간신히 구한 고등어를 고향 식구에게 먹이기 위해 소금에 절이는 염장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생선을 염장하는 문화는 북유럽에도 남아 있지만, 북유럽에서는 염장 생선을 요리하기 전 우유나 물에 담가 소금기를 제거한다. 반면에 자반 고등어는 생선살에 밴 소금기를 그대로 살려 간간한 맛이 있었다. 우리는 잘 구워 기름이 반지르르 도는 자반 고등어를 젓가락으로 쉴 새 없이 발라먹었다. 신맛이 강한 안동 전통 증류식 소주를 곁들이니 금상첨화였다.

 식사를 마치고 하회마을의 전통 선유쥐불놀이를 감상하노라니 어느새 안동에서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그동안 서울 음식에 길들여져 있던 많은 외국인 회원들이 “이번에 한국의 다채롭고 풍부한 음식 문화를 새삼 확인했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나는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리=나원정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 기획

● 제니퍼 플린(Jennifer Flinn)

1980년 미국 출생. 1999년 경북 안동에서 원어민 교사로 근무하며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미국 UCLA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다시 들어와 한식 블로그 ‘팻맨서울(fatmanseoul.com)’을 열었다. 이후 왕립아시아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회원 1000여 명과 함께 전국 답사를 하고 있다. 현재 경희대 교수학습지원센터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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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엔 매콤한 찜닭, 저녁엔 깔끔한 헛제사밥 “양반처럼 호강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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