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법부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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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정치권 인사들과 일부 시민이 불복하고 공격하는 사태는 매우 우려된다. 정 전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BBK 의혹을 제기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등법원에서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판결은 1, 2심에서 다툰 사실관계에 대해 제대로 법리를 적용했는지를 살피는 법률심이다. 하급심에서 밝혀낸 사실관계에 비추어 과도하게 법을 적용했을 경우 파기환송하고, 적법하다면 인정한다. 유·무죄를 다투는 재판에서 판사 한 사람이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사법부는 심급 구조를 갖추고 3회까지 재판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정 전 의원도 이와 같은 절차에 따라 1, 2심을 거쳤고, 여기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하급심의 판결이 법리적으로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한 것이다.

 사법부는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곳이다. 법은 입법과정에서 각종 논란을 수렴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확립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을 지키고, 이를 집행하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그런데 이번 정 전 의원과 지지자들의 행태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이들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일간지 1면에 ‘정봉주는 무죄’라는 광고를 내고 대법원의 ‘현명한’ 판결을 촉구했다. 또 이 사건 담당 대법관과 가족의 신상을 인터넷에 올리고 무죄 확률을 점치는가 하면, 무죄 판결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는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판결해야 하는 재판부에 다수의 힘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하자 트위터리안들은 사법부를 공격하는 트윗을 날리고 있다. 여기에 정치인과 유명 인사들이 합세했다. 이들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유리하면 ‘정의롭다’고 치켜세우고, 불리하면 마구잡이로 비난한다. “사법부에도 조종이 울리는군요”(공지영), “대법원은 자신의 판결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할 날이 올 것이다”(정동영), “mb, 시민과 붙어보자 이거네요”(문성근)….

 이번 사태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바로 법을 만드는 정치인과 대중적 인기를 업은 유명인들이 법 집행 절차를 전면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특히 정 전 의원은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이후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를 통해 이슈 메이커로 떠올랐다. 그래서 이 재판에 쏠리는 관심도 지대하다. 이런 유명 인사의 재판 결과에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달려들어 불복 입장을 밝히며 법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일반 국민에게 법을 불신하는 경향을 전파할 수 있다. 물론 법이 만능은 아니다. 하지만 법이 무시당하는 사회는 통제기능을 잃고, 사회적 혼란이 일어난다. 일부 야당 의원은 “BBK 의혹을 끝까지 밝히겠다”고 선언했다. 의혹은 밝혀져야 한다. 그것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밝히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 전 의원이 자신을 영향력 있는 오피니언 리더라고 생각한다면 판결에 승복하는 모습을 빨리 보여주고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