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근혜 체제’가 내놓아야 할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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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나라당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당 운영을 맡기기로 했다. 박 전 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 쇄신 작업을 지휘할 걸로 보인다. 이제 한나라당의 운명은 박 전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한나라당이 더 추락할 수도 있고, 비상(飛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박 전 대표가 무슨 그림을 내놓을지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그가 장고(長考)를 하고 있는 데다 비대위가 아직 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선 크게 두 가지의 길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당을 존속시키면서 쇄신하자는 리모델링론과 당을 해체하고 신당을 만들자는 재창당론이 그것이다. 한나라당이 이 중 어떤 걸 고를지는 ‘박근혜 비대위’의 몫이다. 박 전 대표는 당 안팎의 의견을 골고루 수렴한 다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리모델링이든, 재창당이든 중요한 건 쇄신과 개혁의 내용이다. 껍데기가 무엇이든 알맹이가 부실하다면 국민은 다시 한나라당을 외면할 것이다.

 어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선 리모델링이 맞느냐, 재창당이 옳으냐, 비대위를 내년 4월 총선 때까지 끌고 갈 거냐, 말 거냐, 전당대회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박 전 대표에게 어떤 권한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당을 어떻게 쇄신하고, 무엇을 변화의 증거로 내놓아야 하는지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 의원들이 쇄신의 내용보다는 형식적이고,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 것이다.

 ‘박근혜 비대위’가 당을 어떻게 바꾸든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건 성찰과 반성이다. 지금의 정치 난맥상이 왜 초래됐는지, 국민은 왜 기성 정치권을 외면하고 있는지, 한나라당은 왜 기능부전 상태에 빠져 있는지 등에 대해 ‘박근혜 체제’는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 다음 정치의 위기, 사회의 갈등 문제 등을 어떻게 풀 것인지 분명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한나라당을 쇄신해야 할 책임을 진 대표 정치인으로서 박 전 대표가 지향하는 정치철학과 가치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설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박근혜 비대위’가 성공하려면 내부적으론 대동단결하는 분위기부터 조성해야 한다. 어제 의총에서도 계파·파벌 간 갈등과 불신이 표출됐지만 이 문제를 방치하고서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우선 친박계부터 해체하는 게 옳다. 그런 다음 친이계 등을 향해 “우리들 마음속의 계파도 없애자”고 호소하길 바란다. 비대위를 운영하면서도 초당적이고 포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계파 공천’ ‘보복 공천’은 결코 없을 것임을 천명하고, 공명정대한 공천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도 사심(私心) 없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박근혜 비대위’가 실패하면 한나라당과 박 전 대표에겐 미래가 없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