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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월드 SEOUL9 관람기] 현장 스케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방학시즌에 열리는 만화행사들의 신호탄 격인 [코믹월드 SEOUL9]가 2000년 7월 29일, 30일 양일간 여의도 중소기업 전시장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코믹월드]가 모처럼 좁아터진 제 2관이 아닌 제 1관을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꽤 기대를 하게끔 만들었다.

짖궂게도 비와 햇님을 동시다발로 보여주던 무덥고 습기찬 여름날씨 속에서도 사람들 - 특히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이 대거 몰려들었던 이번 행사. 과연 어떤 볼거리가 있었을까.

현장 스케치

[그림 1]
- 들어가기 앞서 먼저 매표소. ..S.E.TCHNO의 '적자는 보지 않는다' 원칙에 의한 3천원의 입장료는 여전히 행사 내용에 비해 비싸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 3천원을 내면 입장권 대신의 스티커가 주어진다.

역시 매번 이야기하는 거지만 스티커는 특정 소재의 옷에 부착했을시에 떨어지기가 쉬워, 이번에도 퇴장하는 이들에게 스티커를 달라고 구걸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띄기도 했다. 2천원의 가격에 소장가치까지 높은 뱃지로 입장권을 대신하는 [ACA]에 비해 무성의하다는 느낌마저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확실히 방학시즌. 행사장 안팍으로 넘쳐나는 사람들의 태반은 사복차림의 중고교생이었다.

[그림 2]
- 행사장에 들어가자마자 놀란 것은 아무래도 [암모나이트 버전]의 부스 앞을 가득 메우고 있던 여성동지들.' HOT와 NRG 팬북 부스에 줄이 늘어선 건 본 적이 있었지만 보통 부스에 이렇게까지 줄이 늘어선 건 거의 없었어!!'라고 놀라움을 금치던하게 만든 장본인은 다름아닌 〈이보다 더 좋은 '수'는 없다〉와 〈신선놀음〉재록본.

특히나 〈이보다 더 좋은..〉는 이미 아마계에선 유명인사인 SALT BAR님과 암모나이트님의 트윈으로 그려진 무려 '黃天化封神追募哀爐冊'이라는 천화 온리 러브러브 팬북으로, 제목에서부터 위험천만한 - 오로지 동인의 위험한 세계를 알고 있는 여성만을 위한 여성전용 온리 '천화총수' 패러디집.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야만 구입할 수 있는 18금에 여성전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첫날에 완매시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 [ACA]에 비해 팬시위주로 무게중심이 이동해가고 있다는 느낌이 확연히 들 만큼, 행사장 안에서 회지를 찾아다니는게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팬시는 그 특성상 SD가 주 종목인데, 캐릭터들이 무한히 많은 게 아닌데다 또한 SD라는 것 때문에 특징을 부여하기 어려워 결국 어딜가도 비슷비슷한 팬시들이 난무하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팬시가 너무 많고 또 그것이 주종이 되다보니 동인들간의 특색을 느끼기란 아주 어렵게 된 상황. 이렇게 되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그나마 팬시 온리로 나온 곳 중에서 눈길을 끌었던 동인은 대전출신의 막강카리스마부대 [엘도라도]. 코믹갱스터Y님을 필두로 한 엽기패러디팬시 공세는 사람들 눈을 잡아놓기 충분했다.

이전 행사에서 선보였던 엽기팬시 〈윙문〉에서부터 〈카드캡터 X〉 〈에뒝츄〉를 그려내어 많은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들었던 팀으로 이번엔 〈화투캡터 카무이〉라는 걸작(!)을 내걸고 〈히카루의 바둑〉 망가뜨리기 패러디들을 다량 선보이기도 했다. 엽기도로 따지자면 [노랑지갑 to 비버스777]도 만만치 않았는데, "진짜 허접을 보여주마!"를 모토로 근근츄(..;)를 비롯한 특유의 근육질파워 넘치는 엽기그림들을 선보여 많은 이들을 기겁시키는데 성공했다(한 걸로 보인다).

- 전반적으로 회지들의 수준이 다운된 느낌이 적잖이 들은 것이 사실. 수가 적은 탓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급조된, 소위 '날림'의 성향이 강한 책들이 다수였던데다 그림이 좋아도 내용적인 면이 허술한 것들이 많아 다소 실망스러웠다.

특히 오리지널 창작이 아닌 패러디 원고를 하는 팀들에게 더더욱 해당되는 말인데, 패러디의 미학이라는 것은 단순히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라 생각되진 않는다. 한 작품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또 다시 한 번 생각케 만드는 그러한 것이 패러디의 멋 아닐까? 아무런 내용없이 뻔한 야오이나 재미없는 개그를 일삼는 것은 결코 좋은 반응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이런 가운데 소위 동인계에서 실력파로 통하는 인물들의 원고들은 고정팬을 비롯해 행사장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던 케이스. 대표적인 사례로 앞서 소개한 〈이보다 더 좋은 '수'는 없다〉라는 기서(..)를 만들어낸 Salt Bar & 암모나이트 페어를 비롯, Khai & Mint Choco & Sanzo Yohji님이 참여한 〈디지캐럿〉 온리 패러디북(..을 가장한 푸치캐럿 러브북) 〈LEMON TEA TIME VOL.3〉, 프로와 아마츄어를 오가는 실력파 TAMA(유현)님의 〈SOUL HACKERS〉 패러디북 〈NET CRISIS〉, RINO님의 〈고스트 바둑왕(원제 '히카루의 바둑')〉 패러디북 〈閉家愧談〉등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건담W〉 캐릭터 패러디북 〈Memory Of Time(MOT)〉으로 매니아층까지 형성되어있는 Faid님의 경우는 〈MOT〉의 완결 여부가 상당한 관심사였으나 이번에도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펑크.. 다음기회를 애용할 수 밖에..

[그림 3]
한편 유난히 변신합체(?)가 눈에 띄기도 했는데, 각자 활동하던 동아리에서 헤쳐모여 만든 팀들에서 나온 동인지들 또한 꽤 재미있었다. NAz & Yulto & Zig님의 〈원피스〉 패러디북 〈Coming Out(일명 '나쁜원피스'..;)〉를 비롯, 무려 히소카 러브라는 극악엔진을 탑재한 NOCE & SAKRA님의 〈헌터×헌터〉 팬북 〈Lovely Magician〉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유명 동인들의 합체공격은 상당한 즐거움이었다. [이난]의 Yulto님은 개인서클 [High & dry]를 통해 〈봉신연의〉패러디북 〈Nice Dream〉이라는 개인지까지 선보이는 등 여전히 왕성한 작품활동을 보여주시기도.

지난 2월의 [코믹월드 서울6]에서 권당 100원의 가격과 "무조건 사라, 두 권 사라!"의 기치뇹 내걸었던 [명부마도]에서 볼 수 있었던 쥰쥰님도 이번 행사에 참가, [Xtream]이라는 이름으로 또 하나의 회지를 내놓았지만 회지라기보다는 역시 동아리 홍보지에 가까운 편. 한편 HOT, NRG등 인기가수의 팬북을 낸 부스들에도 소녀팬들이 수없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었다. ..행사가 거듭될수록 이들 팬북들이 늘어나는 추세로 보인다.

- 동인계에서 한창 인기를 끌던 〈봉신연의〉 〈원피스〉 〈헌터×헌터〉등 점프(주 : 일본의 주간 소년지) 계열의 이전 인기작품들에의 동인지 수가 약간 수그러든 반면 〈휘슬!〉〈나루토〉〈고스트 바둑왕(원제 : 히카루의 바둑)〉등의 최근 인기작들을 다루는 동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도 꽤 재밌는 사실. [Sheer Nonsenese]의 Justis님과 [Happy House]의 Kuma님이 각각 〈휘슬!〉의 팬북인 〈PAIR PLAY〉과 〈Inside〉를 내었고, [유기소년]팀은 아마도 한국 만화행사 사상 가장 큰 판형이었을 대형사이즈의 〈나루토〉 팬북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한편 〈바이스 크로이츠〉와 〈D.N.ANGEL〉등 소수이긴 하지만 꾸준히 패러디하는 동인들이 보였고, 만화는 아니지만 게임인 〈환상수호전〉과 〈SOUL HACKERS〉등의 팬북도 그 명맥을 계속 유지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지 한창 잘 나오던 〈페르소나〉 관련 팬북이 많아 안보이더라는 것은 의문.

그러나 다소 패러디쪽으로 치우쳐, 오리지널 회지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는 사실은 상당한 아쉬움이다. 하긴, 회지 자체가 적었으니.

- 복잡한 행사장이었지만 나름대로 기동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여기저기에서 보여졌는데, 얼마전부터 행사장에 등장하기 시작한 킥보드와 인라인 스케이트가 그 예. 이번의 경우 통로가 워낙에 좁아 효과를 많이 보진 못한 것으로 보이나 넓은 행사장 안을 돌아다니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자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행사장 한 켠의 무대행사장. ..여전히 [코믹월드] 행사장에서는 무대행사장에 설치한 대형 프로젝트TV를 통해 간이상영회를 열고 있었다. 이번 행사에서 상영된 작품은 〈러브히나〉〈사무라이 스피리츠 2 - 아수라 참마전〉등.

한편 무대에선 강수진 성우님의 토크쇼가 열리기도 했다. 방송을 통해서나 들을 수 있던 그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여서인지 많은 인원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TV는 강수진 성우님의 출연작을 소개할때에도 유용하게 쓰이기도.

청명(카드캡터 체리)과 반(에스카플로네)의 목소리를 즉석에서 연기하시기도 했는데, 특히 반의 목소리를 연기하실때의 감정 고조를 그대로 증폭, 대사의 "웃지마!"라는 부분을 관중석쪽으로 던지는 재치뇹 발휘하는 등 여러모로 재밌는 시간이었다. 스스로 '목소리에 비해 다소 안맞는 얼굴'이라며 즉석 연기 직전엔 "다들 눈 감으세요"라는 멘트를 던지기도. 강수진 성우님의 하이텔 팬클럽인 [수진여울(sg1043)]에서는 대형 깃발까지 들고나와 흔드는 열성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림 4]
- 코스프레는 이제 만화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요소. 덥고 습기찬 이 여름날에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노력은 차라리 근성이었다. 역시 〈최유기〉 〈봉신연의〉등 코스튬에 알맞는 소품들이 많은 작품의 캐릭터들이 많았지만, 행사가 거듭될수록 다소 마이너적인 작품의 캐릭터를 찾아내는 노력들이 군데군데 보이는 것이 참 재미났다.

마이너 중의 마이너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로 행사장 내에서 가장 반향이 컸던 분장자는 아마도 〈전설의 마법 쿠루쿠루〉에 등장하는 북북춤 할아버지가 아니었을지(!). '니케도 나오고 깁플도 나왔는데 왜 저 할아버지는 안나와? 제발 나와라!'라고 염원하던 것이 이뤄진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는.. 그렇다, 코스튬 플레이어의 로망은 바로 이런것이었다(!).

[그림 5]
한편 근래에 개봉했던 영화 〈비천무〉의 철기십조 코스튬은, 원작이 김혜린님의 만화 〈비천무〉라는 사실과 함께 만화행사라는 것에 묘하게 매치되는 느낌이 들기도.

- 무대행사에서 벌어졌던 코스프레쇼는 다소 맥빠진 느낌이 들 정도. 음향효과의 미비도 그 이유중 하나이지만, 그다지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팀이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이겠다. 〈봉신연의〉와 〈바람의 검심〉〈환상게임〉 등의 작품과 국산게임 제작사 소프트맥스의 4LEAF 캐릭터들이 선보여졌으며 나름의 격투와 연출을 선보였다.

그러나 코스튬 플레이어들의 고질적인 병폐인 '소재부족' '연출부족'이 고스란히 보여졌는데, 다른 건 접어두더라도 이 더운 날씨에 '껴안고 키스하기'어택이 왜 그리도 잦아야 하는지. 엄연한 무대행사인만큼 좀 더 진지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지 싶다.

아마도 가장 많은 찬사를 받았던 것은 〈멋지다 마사루〉팀이 아니었을까. 특유의 오버액션과 개그컷적인 묘사를 잘 나타내어 많은 박수를 받았다. 바지내리기에 이은 섹시코만도 묘사부분은 그 중에 압권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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